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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여진, 혹은 쓰여지지 않는 노동 이야기김유경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
▲ 김유경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

“이공계 전공하셨어요?”

정보통신(IT) 전문 기자 시절, 새로운 취재영역을 맡아 취재원을 만나면 늘 듣곤 했던 질문이다. 산업정책 기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소프트웨어·인터넷·방송통신 영역은 기본적인 기술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취재원을 만나면 진땀 빼며 외계어만 듣다 오기 일쑤였다.

한 시간가량 열심히 뭘 아는 척 취재수첩에 적고 나서 일어날 때쯤 취재대상이었던 연구원 얼굴에서 이런 속마음을 읽었다. “뭘 알고나 적나,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오기는 할까?”

노무사가 되고 나서 이제는 취재하는 입장이 아니라 취재당하는 입장에서 종종 취재요청을 받는다. 과거 정권에 비해 노동관계법령이 자주 바뀌고, 종래 판결을 뒤집는 대법원 판결도 속속 나오고, 노동부까지 기존 행정해석을 폐기하는 데 열심인 터라 노동 담당 기자들은 노동법 전문가의 코멘트가 필요하다. 그런데 인터뷰 전화를 끊을 때마다 불현듯 십수 년 전 그 연구원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오르곤 한다.

노동 관련 기사가 잘못된 사실을 바탕으로 쉽게 쓰여지거나, 노골적으로 사용자 편들기용 기사로 변질되거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에게 ‘떼쓰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도구로 악용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기사들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은 매우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2003년 법정 노동시간이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되는 법이 통과되고 2011년 완전 시행된 지 8년이나 흐른 2019년, 연일 지면을 장식했던 기사 제목은 ‘주 52시간 노동시간단축’이었다. ‘주 40시간’에서 ‘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된’ 이상한 일에 대해 언론은 그 배경을 꼼꼼하게 살펴 알리지 않았다. 이제는 고등학교 노동인권 교육시간에 대한민국의 주 노동시간을 질문하면 다들 “주 52시간이요~”라고 답한다. 문제는 ‘주 52시간’이 너무 자연스럽게 여겨지다 보니 ‘주 40시간+노동자의 동의를 얻어야만 연장 가능한 주 12시간=52시간’이라는 공식에서 ‘노동자의 동의’는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다는 것이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인사가 ‘실리콘밸리형 인재’ 운운하며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를 박탈한다고 공식 언급한 기사의 제목은 “주 52시간제”로 시작한다. 마치 주 52시간이 기본값인 것처럼 못 박아 놓고, 그것마저도 ‘과도한 단축’이란다.

지난해 말 대법원에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노동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의 효력에 관한 판결을 내린 다음날 자문 노동조합들로부터 즉각 연락이 왔다. “그럼 노사가 합의한 사안들이 조합원 개별 동의 없으면 다 무효라는 건가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기사를 검색해 보니, 해당 사건의 구체적이고(비조합원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부동의), 특수한(취업규칙 변경에 앞서 매우 상세한 연봉액까지 개별 근로계약에 적시) 사정은 모조리 생략한 채 “노동자 개별 동의 없으면 노사합의 무효”라는 제목들이 마치 엄청난 일이 벌어진 양 포털 화면을 도배했다.

설을 앞두고 가장 자주 노동·사회면에 등장했던 서울교통공사 파업 예고 보도의 경우 한술 더 뜬다. 다수 매체가 마치 파업의 목적이 ‘고작 12분 연장근로’ 때문인 것처럼 앞다퉈 보도했다. 지하철 승무원의 복잡한 운행시각표(일명 다이아, Diagram)를 분석하지는 못하더라도, 사측 안이 결국 증원 필요인력을 줄이려는 꼼수이자 근로기준법(탄력적 근로시간제) 위반 행위라는 것 정도는 설명했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의 사실관계는 어디에도 없고, 오로지 ‘시민 볼모’ ‘교통대란’ ‘불법파업’ 같은 선정적 문구만이 난무한다.

이 정도만 되짚어 봐도 화가 나지만 최악은 따로 있다. 오보나 왜곡보도나 사용자 이익을 위해 쓰여지는 기사가 아니라 아예 ‘쓰여지지 않는’ 사실들이다. 매일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일터에서 쫓겨나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탄압당하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지만 언론은 별 관심이 없다. 노동자들이 혹한의 날씨에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 몸을 던지고, 곡기를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200일 넘게 고공농성을 이어 가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지인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아닌 언론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노동기사가 사회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 채 한낱 ‘가십거리’로 전락할수록, 혹은 노동자 실상을 숨기는 데 급급할수록 일하는 사람들이 설 땅은 점점 좁아진다.

새해에는 스크랩해 두고 공유할 만한 노동뉴스를 자주 만나고 싶다. 왜곡하고 비틀지 않은 채, ‘죽음’보다 ‘삶’을, ‘돈’보다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기사들을.

김유경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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