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2.22 토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기고
전노협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단병호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이사장(전국노동조합협의회 초대위원장)
▲ 단병호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이사장(전국노동조합협의회 초대위원장)

1월22일은 당시 노태우 정권의 폭압적인 탄압을 뚫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결성된 지 만 30년이 되는 날이다. 강산이 세 번씩이나 바뀐다는 세월이니 결코 짧지 않는 세월이다. 그만큼 전노협에 대한 기억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엷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난 아직도 온몸으로 생생하게 전노협을 기억한다. 화석에 새겨진 기억처럼.

1988~89년 노동자들은 “악법 철폐! 건설 전노협!”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40여년 동안 자본과 권력과 결탁해 유일노총 지위를 누리며 노동자 위에 군림하는 관제·어용조직이었던 한국노총을 노동자들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전국조직을 건설하는 것은 당시 노동자들의 열망이었다.

전노협 결성은 험난한 여정이었다. 전노협 결성에 앞장섰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구속됐다.

노태우 정권은 전노협을 반국가단체·체제전복세력으로 규정하고 방송차를 동원해 서울시내에서 가두 선전전을 벌였다. 결성 당일에는 전국에서 차출된 경찰 5만명으로 서울의 모든 대학교를 원천봉쇄해 전노협 출범을 막았다. 어쩔 수 없이 성균관대 수원캠퍼스로 장소를 옮겨 대회를 치러야 했다. 창립대회 중 경찰이 난입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연행·구속되기도 했다.

창립 이후에도 전노협을 와해시키기 위한 정권과 자본의 탄압은 집요하게 이뤄졌다. 업무감사라는,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명분을 들이대며 전노협 탈퇴를 종용하는 회유와 협박을 무차별적으로 자행했다. 이런 혹독한 시간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전노협을 사수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노동자는 “내가 전노협이다. 전노협을 탈퇴하라는 것은 내가 나를 배신하라는 것이다”라며 탈퇴협박에 맞섰다. 또 어떤 노동자는 전노협 탈퇴에 맞서 죽음으로 항거했다. 그렇게 전노협은 결성되고 사수됐다.

한국 노동운동에서 전노협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와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민주성·투쟁성을 계승해 민주노총으로 승계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민주노조 총단결을 이뤄 내 민주노총을 탄생시키는 산파로서의 소임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전노협의 활동은 민주노조운동의 좌표가 됐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이 짚어 볼 수 있다. 첫째, 전노협의 활동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었다. 한국노총을 통해 깊게 뿌리내린 노사협조주의 내지 조합주의 운동을 아래로부터 붕괴시키고 자주성과 민주성, 계급성과 연대성, 투쟁성과 사회변혁 지향으로 일컬어지는 민주노조운동의 지평을 넓혔다.

둘째, 노동조합운동의 조직노선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전노협은 기업별노조를 타파하고 산별노조의 전국중앙조직 건설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전노협에 가입한 8개 대기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미가입 대기업노조를 묶어 ‘대기업연대회의’를 조직하는 등 산별노조의 토대를 넓혔다. 또 조선산업노동조합협의회 결성을 주도하는 등 산별노조 건설을 구체적으로 모색했다.

셋째, 전노협은 정치방침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내걸어 사회 변화와 발전을 위한 노동자의 정치적 역할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혹독한 탄압으로 구체적인 실천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넷째, 전노협은 노동자 투쟁의 전국적 구심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임단투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조탄압이 일상적으로 저질러졌고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완강하게 진행됐다. 전노협은 이런 투쟁을 지역 내지 전국적인 투쟁으로 조직하고 지원하고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전노협의 위상과 지도력에 대한 신뢰는 매우 높았다.

이 밖에도 노동자 권리와 임금 수준을 높이기 위해 공동임단투를 조직해 대응함으로써 노동자의 상태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무렵(1995년 중반에 이르는 시기) 노동자들의 조건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전노협은 1995년 민주노총 결성과 함께 발전적으로 해산하기까지 5년 동안의 짧은 기간 활동했지만 민주노조운동에 남긴 발자취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전노협이 혼신을 다해 지켜 왔던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과 헌신성과 치열함은 노동조합이 올바른 민주노조운동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가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단병호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단병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