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확산을 추진한다. 하지만 공무원과 공공부문 노동계가 직무급 도입을 강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직무급제 취지와 달리 임금격차만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책자 발간

고용노동부가 13일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책자를 발간했다. 정부는 올해 경제정책방향에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개편 지원”을 넣었다. 그 일환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임금구성 단순화에서 시작해 △임금체계 개편 방법과 사례 △직무분석·평가 방법 △새로 개발한 제조업 범용 직무평가도구 활용방법을 책자에 담았다. 노동부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과 연계한 직무 관련 정보를 구축하고 임금·평가체계 개선 분야 컨설팅을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운영 중인 임금직무정보시스템 개선도 추진한다. 병원과 금융·공공기관을 포함한 8개 업종에서 2개 사업장씩 선발해 직무급제를 시범실시할 계획이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적 호봉제는 기업의 청년채용 여력을 줄이고 임금격차를 벌리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안으로 거론된 것이 직무급제다. 직무의 난이도와 업무강도·책임 정도, 요구되는 기술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체계다.

문제는 시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직무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기 어려운 데다, 산업이나 업종별 임금정보가 축적돼 있지 않다. 연차와 나이가 쌓일수록 지출이 늘어나는 우리나라에서 연공급제는 노동자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제도다. 노동계가 반발하는 이유다.

직무급제 전환 무기계약직만 임금인상 억제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노사협의로 직무급제를 도입한 공공기관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추진했다. 공무원노조를 비롯한 공공부문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 같은 업종별·의제별 위원회에서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 중이다. 합의문이 나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정책에 따라 별도직군으로 직접고용된 일부 노동자들은 직무급제를 적용받고 있다. 직무급제는 임금인상이 쉽지 않은 구조로 돼 있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정규직의 임금체계 개편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규직과 별도직군 간 임금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직무급제 시행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말이다.

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대책은 민간기업이 노사자율로 직무급제를 시행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공공부문 논의가 막힌 상황에서 민간부문 확대는 한계가 있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사회학)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해 연공급 성격을 완화하는 방향의 임금체계 개편은 필요하다”면서도 “공공기관 정규직은 (직무급제를) 안 하고 무기계약직만 도입하면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진다”고 말했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연공성이 가장 강한 공직사회에 직무급을 도입하지 않는데 민간기업에서 하겠냐”고 반문한 뒤 “공공기관의 경우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을 합쳐서 직무를 평가하고 인건비를 배분하지 않으면 직무급제 도입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 취업규칙 지침 떠올리는 노동계

노동계는 노동부가 직무급제 지원방안과 책자를 발표하자 “일방 추진”이라고 반발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성과연봉제 확대를 위해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발표한 것을 떠올리고 있다. 양대 노총은 성명에서 한목소리로 “노정협의 또는 지원방안 철회 뒤 재논의”를 요구했다.

임서정 노동부 차관은 이와 관련해 “이전 정권의 2대 지침과 달리 당사자들의 의사에 반해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며 “대화하고 협의해 추진하도록 관련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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