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202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 산화하신 지 50주기가 되는 해. 더불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창립 20주년이기도 한 해라 필자에겐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촛불항쟁 이후 촛불정부를 자임한 정부가 집권했다. 한국현대사 내내 배제되고 홀대받은 노동의제가 최저임금 1만원을 필두로 부각되고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촛불노동공약으로 주목받으며 노동존중 사회 시금석으로 공인되는 등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불평등 양극화 노동현실은 쉬이 바뀌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이행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노조 조직화가 진전돼 간만에 11%를 넘어서긴 했지만 민간부문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노동시장 양극화 구조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사회적 대화가 진전되기 어려운 조건을 냉철하게 직시한다면 활로를 여는 분기점이 될 만한 계기가 요청된다. 새해를 맞아 간절한 바람 몇 가지를 제안한다.

핵심 노동현안이 하루빨리 매듭지어져 해결돼야 한다. 톨게이트 직접고용 정규직화와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권고안 이행과 발전 5사 정규직화 실현, 특수고용 비정규직으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한국마사회 문중원 열사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사정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 당사자들과 유가족의 절절한 요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자임하고,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특조위 권고안 이행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비정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노동존중 사회 청사진은 구체적인 노동현안이 해결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노동현안 해결전망이 적신호에서 청신호로 바뀔 수 있기를 바란다.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은 시대정신이 담긴 공약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불평등 양극화로 고통받는 500만명이 넘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달린 중대한 과제다.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후보부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이르기까지 여야 대선 주자들의 공통 노동공약이었다. 올해까지 1만원을 달성한다는 공약은 파기됐고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1만원은 이 정부가 책임져야 할 핵심 공약이다.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작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홀대해선 안 된다. 최소한 남은 임기인 2022년까지 시급 1만원을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약속을 대통령이 공표했으면 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자회사 논란이 커지고 우여곡절 속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그래도 이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비하면 진전이 있었다. 공공부문 비정규노조 조직률 제고가 빠르게 이뤄진 배경이 되기도 했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점검과 시정이 필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민간부문이다. 좋은 일자리 창출과 확대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대두됐지만 재벌대기업이 ‘슈퍼갑’으로 군림하는 민간부문에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삼성그룹은 아직도 무노조 경영을 공식적으로 폐기하지 않고 있고 여러 재벌 사업장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가 빈번하게 터지고 있다. 목숨보다 귀한 것이 없음에도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가 지금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형국이다. 올해가 현재 공공부문 수준으로 민간부문 노동문제가 개선되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

특수고용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플랫폼 노동이 급증하면서 노동권 사각지대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정부가 책임지고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을 비준하고 교사와 공무원 노동 3권 보장과 함께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마땅하다. 국제기준에도 못 미치면서 선진국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임을 내세우는 건 낯 뜨겁다.

임금체계가 합리적으로 개편되는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 밥이 하늘이라고 했다. 노동의 대가인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임금 수준과 체계를 둘러싼 논란이 해소돼야 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모델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적용 문제도 지금의 임금체계 난맥상을 그대로 두고선 진전되기 어렵다. 통상임금 산정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도 마찬가지다. 유노조 사업장과 무노조 사업장의 간극과 장벽을 낮추고 노동자 간 연대와 단결을 실현하기 위해 민감한 쟁점이 잠복해 있는 임금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은 임금체계 문제를 매듭지어야 주요 노동현안과 의제도 더 나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가 복원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더욱 바람직하겠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의 연속이지만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사안들의 실마리가 풀리고 결실을 맺는 방향으로 마무리되길 소망한다. 무엇보다 힘겹고 고단한 일상을 감내하고 있는 비정규·여성·청년 노동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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