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하는 일에 자주 좌절감을 느끼는 청년이 있었다. 그에게 한 동료는 “반성은 연말에 몰아서 하라”고 조언해 줬다고 한다. 그렇게 연말이 됐고 각자의 송년회에서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올 한 해를 돌아볼 것이다. 일터에 대한 불만부터 앞으로의 인생설계까지, 어쩌면 매년 반복되는 그 지난한 과정들이 눈에 보일 듯 그려져 지루하다 생각하다가도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기다려지곤 했다.
매년 송년회에서는 1년에 한 번 겨우 보는 친구들과 한 해 결산을 하며 요즘 이슈에 대한 이모저모를 듣는다. 그러나 여느 활동가들처럼 친구들과 우리들의 세계는 꽤 달라서 이슈를 해석하는 것도, 비슷한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송년회를 기대하는 것은 청년유니온에서 진행했던 주제별 모임, '불편한 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서 고민한 것들을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불편한 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순발력이 없어서, 또는 용기가 없어서 대답하지 못했던 무례한 말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조합원들과 함께 고민하는 모임이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고 우리의 감수성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상황들도 많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상상만 했던 ‘사이다 발언’이 난무하는 모임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우리의 현실은 사이다 발언의 뒷면 같은 것이었고 모두들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우리는 대화를 하고 싶어 했다.
사이다 발언을 한다고, 뼈 때리는 한마디를 한다고 직장생활이 나아지는가. 불편한 대화는 구조에서 나온다. 상사가 자신의 말을 조심하고 막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조직문화, 불편한 대화가 ‘대화’로 돌아올 수 있도록 조직 내의 합의지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내 말이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누구에게 그 영향이 돌아갈지. 그로 인해 다치는 사람은 없을지, 다치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할지, 그런. 하다못해 우리가 정의할 ‘합의’는 무엇인지 물어볼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논의를 해 본 경험이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동안 들어온 무례한 말들에 대한 상처를 쏟아 내고 그 말을 분석해 내는 과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다양한 상황들에서 대화를 이어 가는 연습을 한다. 몇 가지 상황과 역할을 주고 일대일 대화상황을 연습하는 것으로, 그동안 참가자들이 나누던 대화 상황들을 예시로 넣어 어쩌면 이불을 걷어찼던 수많은 밤들의 복수전이 될 수도 있겠다. 우리도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럴듯한 대화의 꿀팁 같은 것도 없다. 다만 그 불편한 대화들을 되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불편한 대화를 이루는 요소가 ‘내가 맞고 네가 틀린’이라면 그 기존 질서를 향한 질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청년의 역할 아닐까.
“나 때는 말이야”는 세대갈등을 대표하는 말이 됐다. 그 말이 가져오는 청년들의 공감은 전혀 가볍지 않다. 새로운 사람은 언제나 등장하고 윗세대의 “해 봐서 아는데”에 콧방귀 뀌며 나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그 오만을 귀하게 여겨야 하지 않나. 그것이 역사를 반복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결과가 있을 것을 기대하며 지치지도 않고 해 보는 일. 그래도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에 책임을 지는 것이 기성세대의 역할인 거지. 하지 마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 아니고, 겁먹는 것이 청년의 역할이 아니듯.
불편한 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슬 청년유니온 조직팀장
- 기자명 이슬
- 입력 2019.11.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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