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9. 10. 24. 선고 2017가합544834 판결

1. 사건 개요 및 쟁점

피고 현대모비스 주식회사(이하 ‘피고’)는 자동차 부속품 제조·판매업을 영위하는 회사로서 부품 생산·품질 검사 및 수출용 포장업무를 각기 다른 협력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원고들은 각각 피고의 부품 생산 협력업체에 입사했다가 수출용 포장 전문 협력업체에 배치돼 부품 출하 전 품질을 검사하는 ‘CKD 검사원’으로 근무하다 근로자지위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이 사건은 통상적인 근로자파견 형태와 달리 소속 협력업체와 실제 근무한 사업장을 운영하는 협력업체가 상이했고, 원청사인 피고가 근무장소인 사업장을 소유·관리·감독하거나 정규직을 상주시키지 않았으나, 원고들은 업무형태 및 내용을 증거로 들어 원·피고 간에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 또는 불법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2. 대상판결 요지

대상판결을 내린 법원(서울중앙지법 48민사부)은 이 사건 협력업체들이 독자적 실체를 가지고 있음을 들어 원·피고 간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는 불인정했으나, 2015년 대법원 판결의 각 기준에 비춰 원고들의 업무형태 등 사실관계를 종합하면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고, 비록 원고들이 원 소속 협력업체에서 자발적으로 사직했더라도 이를 사용사업주에 대해 명시적인 고용 반대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없어 고용간주·의무발생 효과는 유지된다고 봤다.

3. 대상판결 의의

가.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 존부.

근로자파견관계의 위 기준에 관하여는 종래 업무지시서·지침·표준 교부 여부에서 나아가, 사용사업주 사업에서 파견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의의·내용 및 파견근로자들의 상시적 보고와 사용사업주가 이에 대해 피드백으로서 업무 지시를 하는지 여부를 종합해, 사용사업주가 전달하는 업무에 관한 정보가 “구체적인 도급정보”인지 “구속력 있는 지시”인지가 문제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연구소 내 시험설비에 대해 보전업무 불법파견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은 개별 점검 항목·기준이 명시된 예방점검표에 대해 "일반적인 도급에서도 수급인의 일 또는 성과가 상세하게 합의될 수 있다"며 구속력 있는 지시로 보지 않았다(서울고등법원 2019. 9. 27. 선고 2018나2062639 판결).

대상판결은 피고의 품질팀 직원들이 상시적으로 품질관리업무 관련 지시사항 내지 업무지침을 전달한 점, 피고의 지시를 받을 경우 이를 이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했고 협력업체들은 그 과정에 개입하지 아니한 점, 원고들이 피고의 지시사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독자적인 결정을 내린 적이 없는 점을 종합해 피고 품질팀 직원들이 원고들에게 구속력 있는 지시를 내렸다고 봤다. 이는 업무 내용을 전달한 빈도·내용·전문성·후속조치를 종합해 판단한 것으로서 ‘지시의 구속성’을 구체적으로 판단한 선례로서 의의가 있다고 보인다.

나.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피고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

위 기준에 관해 종래의 불법파견사건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의 혼재근무 여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으나(현대자동차 등), 비록 물리적으로 작업장소가 분리돼 비정규직 근로자들만 작업공간을 사용하더라도 업무 절차와 내용·상호의존성 등을 분석해 정규직·비정규직이 각각 수행하는 업무 간의 유기적인 연계성이 있다면 단일 작업집단 구성이 인정되는 방향으로 기준 적용범위가 확대돼 왔다고 보인다(현대하이스코 1·2심, 현대차 남양연구소 1·2심, 현대차 탁송 1심 등). 이 같은 적용범위 확대는 기존 생산라인에서 소위 ‘간접공정’이라고 구별이 시도되던 ‘생산관리(지게차)’ 업무에 관해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면 더욱 명확하게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본 사건에서는 사업 편입에 관해 판결문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세밀한 판단이 제시됐다. 우선 대상판결은 피고의 품질팀 직원들과의 공동작업 여부에 관해 1) 피고 직원들의 작업공간 구비 2) 주기적 방문·감독·회의 3) 문제 발생 시 상주 및 공동근무 4)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은 점을 들어 실질적으로 공동작업을 했다고 판단했다. 즉 피고가 직접적으로 품질검사 사업장을 소유·관리·감독하지 않는 사정이나 상주직원이 없더라도, 비상시적인 공동작업과 상시적인 업무연락 유지만으로도 사업편입에 필요한 공동작업의 정도가 충족됐다고 본 의의가 있다.

한편 피고는 원고들이 피고 공장이 아닌 포장업체 공장에서 근무한다고 반박했으나, 대상판결은 "비록 피고 사업장 외에서 근무하더라도 업무수행 방식이 피고 소속 근로자들의 업무와 유기적으로 관련돼 있고, 실질적으로 공동작업을 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이 경우에도 근로자파견관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명확하게 판단을 제시했다. 특히 대상판결은 그 사유 중 하나로 "피고 품질팀 직원들의 지휘·감독이 일반적인 회사에서 직급 및 직책에 따라 실제 업무수행자와 지휘·감독자 사이의 업무분담과 유사한 형태로 이뤄진 점"을 들었는데, 품질업무에 관한 지휘·감독은 피고 품질팀이 수행하나 현장에서의 실제 품질검사는 원고들이 수행하는 구조 및 업무형태는 결국 원고들이 단순노무 인력으로서만 기능하고 독립적인 일의 성과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업무수행자’라는 개념으로 적절히 포착했다고 본다.

다. 원고들 업무의 구체적 한정성과 구별성·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피고 근로자들 중에 원고들의 ‘CKD 품질관리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동일 근로자는 없으므로 비록 ‘구별성’이 있다고는 볼 여지는 있지만, 피고의 품질팀 직원들이 ‘CKD 품질관리업무’의 전반을 관리하거나 원고들을 지휘·감독한다고 보고 결과적으로는 ‘구별성’이 없음을 인정했다. 즉 위 ‘구별성’ 기준은 동일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 근로자의 존부가 기준이 아니라, 누가 해당 업무를 전반적으로 관리·감독하는지에 따라 판단돼야 함을 확인한 의의가 있다고 보인다.

많은 수의 불법파견사건에서 실제 현장 업무 수행은 하청근로자들이 하고, 원청 관련부서는 그 업무 결과를 보고받고 감독하는 방식으로 단순노무 대행기관으로서만 협력업체를 사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상판결은 근로자파견에 장애가 되는 ‘구별성’에 관해 지휘·관리·감독 요소가 없어야 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구체적이면서 타당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라. 원 소속 협력업체의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에 관해.

이 사건에서 원고들의 원 소속 각 협력업체는 그 자체로 피고의 부품생산 협력업체로서 충분한 독립적 실체를 갖추고 있었기에 근로자파견의 위 기준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볼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원 소속 협력업체들이 원고들이 수행한 ‘CKD 품질관리업무’에 관해 독립적 설비를 보유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판단했는데, 이는 결국 근로자파견관계가 원고들의 업무에 관해 판단돼야 함을 고려하면 상당히 타당한 결과로 보인다. 또한 계약관계가 부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포장업체들이 원 소속 협력업체들에게 공장 일부 공간과 더불어 검사대·PC·사무용품을 제공했는데, 이를 독립성 부족의 요소로 본 것은 예리한 사실인정이라고 보인다.

4. 결어

근로자파견 소지를 줄이기 위해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공동작업을 분리하거나 근무장소를 이격시키고 업무지시를 정형화하는 등의 조치가 행해지더라도, 도급된 업무의 의의·내용·절차 및 이를 실제 수행하는 방식을 고려할 때 원청의 인건비·노무관리비를 절감하는 차원에서 단순한 업무보조 수행인력으로서만 기능한다면 근로자파견의 각 기준을 본질적으로 충족하는지 여부를 따져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상판결은 위와 같은 견지에서 종래의 사업편입 판단에 관해 유기적 연계성과 전반적인 관리·감독을 중점으로 분석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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