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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노동운동의 ‘희망’-11·9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장에서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해마다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였다. 그러니 올해도 전태일 열사 기일에 즈음해 민주노총이 개최한 노동자대회에 조합원들이 참여해 결의를 다졌다는 것이 특별한 소식은 아니다. 민주노총 노동자대회가 열렸다는 것만으로는 감흥이 없다. 참석자수를 헤아려 보며 서울 여의도공원 옆 여의대로를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조합원들이 참석했다는 것에 감격도 없다. “노동개악 중단하라!” “이런 국회 필요 없다!” 지난 9일 노동자대회장에서 노동자들은 외쳤다. 그 외침은 달랐다. 특별히 들어야 했다. 사회자 선창에 따라 한 것인데, 이날 대회장에서 조합원들에게 배포된 피켓에도 같은 구호가 새겨져 있었다. 의례적인 행사인 양 나는 참석하지만, 거기서 노동자의 외침은 의례적인 취급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올해도 대회장에서 어떤 구호가 울려 퍼질 것인지에 귀 기울였던 것인데, 이런 외침을 들었다.

2. 문재인 정부는 최근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보완하겠다는 것인데,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통해 사용자들이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제에 따른 부담을 피하게 해 주겠다는 취지로 노골적으로 그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도대체 어째서 주 52시간제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 공약하고 추진해 왔던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그런데 그 노조법 개정안은 이 나라 노동자에게 파업의 자유 등 노동기본권 행사를 규제하는 노조법을 전면적으로 개폐하기는커녕 그동안 민주노총 등이 제소해 ILO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사항들에 대해서만 개정 내용으로 담고는 사업장 내 생산시설 점거행위 금지, 해고자·실업자 사업장 출입 제한 등 규제를 추가했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읽으면, 이날 대회장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동개악 중단하라!”고 외쳤던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는 걸 알게 된다. 탄력적 근로시간의 단위기간 확대로 노동시간에 관한 노동자 권리를 저하시키고,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면서 파업을 포함한 노조할 자유 등 노동자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노조법 개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 규제를 추가하고 있으니 문재인 정부에 노동개악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이 나라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로 볼 때 타당했다. 오히려 이날 대회장에서 “노동개악 중단하라”는 피켓을 준비하지 않고 대회 사회자가 이를 선창하지 않았다면 민주노총은 이 나라에서 노동자 자유와 권리를 위한 자신의 소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했다. 박근혜 정권 심판을 위한 촛불집회장에서 함께했기에, 그리고 여전히 적폐청산과 개혁을 함께해야 하기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에 날을 세우는 걸 주저했다면, 민주노총은 전태일 열사 49주기를 기념하는 노동자대회에서 스스로 “전태일 정신이 민주노총의 정신”이고,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전태일의 후손”이라고 당당하게 대회사에 쓰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대회사에서 한국 노동자와 민중 희망을 넘어 “세계 노동운동의 희망”을 말했다. 하지만 결사의 자유 등 ILO 핵심협약이 보장한 노동자 자유와 권리조차도 아직 쟁취해 내지 못하고 있는 이 나라 노동운동에겐 그건 너무도 먼 희망이 아닐 수 없다. ILO 핵심협약이 보장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는 선진 노동운동이 쟁취한 것이다. 그래서 이미 수십년 전에, 길게는 150년 전에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 목록이 됐는데도 이 나라에서는 ‘아직’이다. 이 나라 노동운동이 되살아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부터 셈하더라도 30여년, 우리는 그동안 이 세상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에 어떤 희망이었던가. 민주노총 등 이 나라 노동운동이 어떤 새로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 목록을 이 세상에 가져온 것일까. 여전히 오래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 목록만 열거하면서 쟁취를 외치고 있을 뿐이다. 정말로 나도 우리 노동운동이 세계 노동운동의 희망이 되기를 바라지만, 희망을 말하기엔 오늘은 너무도 이르다.

3.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정부는 노동시간단축 외침에 탄력근로제 개악안을 던지고, ILO 핵심협약 비준 요구에 노조파괴법을 던졌으며”, “국회는 누가 더 개악하나 일 년 내내도 모자라 지금까지 다투고 있”다며, “정부가 노동개악 운을 띄우면 국회가 더 많은 개악을 요구하는 ‘노동절망 사회’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렇게 보기에, 즉 문재인 정부의 노동법 개악 추진에 국회가 더 개악한 입법을 하고 있다고 여기기에 민주노총은 이날 대회장에서 “이런 국회 필요 없다!”는 구호를 외쳤던 것이리라. 주 52시간제 근로기준법 개정, 최저임금법 개정 등 문재인 정부의 노동입법 추진을 겪고서 이렇게 외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는 대회장에서 이 구호를 들었을 때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다. 조국 사태 등으로 인한 극심한 대립으로 오늘 국회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못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이 정부안대로 6개월로 확대됐거나, 자유한국당 의지가 관철돼 그보다 더 확대됐을 것이고, 노조법도 마찬가지로 정부안이 의결됐거나 그보다 더 개악됐을지 모른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정부안의 국회 의결을 추진하고, 자유한국당 등 보수의 당들은 사용자 자본을 위해 더욱 개악하자고 추진했을 것이니 그 결과는 뻔했을 것이다. 차라리 국회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 오늘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에 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나는 감히 “이런 국회 필요 없다!”고 외칠 수가 없었다. 사실 이런 국회를 지나서 다시 국회가 정상으로 작동되는 게 두렵다. 그러니 이런 국회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싶다. 노동법이 개악되지 않도록.

4. 돌이켜 보면 이 나라에선 민주니 진보니 하는 당의 집권이 더 두렵다. 그들이 집권하지 않았을 때에는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요구하는 외침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공약 보따리에 담는다. 집권 보수세력에 반대해서 투쟁할 때에는 작은 차이만 존재하는 동지인 것처럼 행세한다. 하지만 집권하면 달라진다. 아직 공약집의 잉크가 마르지 않은 집권 초기를 지나게 되면, 경제 운운하면서 노동자의 권리 삭감이 경제 살리기인 양 사용자를 살리기 위해 덤벼들며 각종 노동개악 정책을 쏟아 내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되면 사용자 자본을 노골적으로 편드는 보수의 당이 합세해서 국회 등에서 너무 쉽게 노동개악이 이뤄지게 된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파견법 등 비정규법과 근로기준법·노조법 입법추진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박근혜 정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관해 2015년 9월15일 한국노총이 참여한 노사정 합의가 있었는데 그 합의의 입법 추진을 정권과 집권 새누리당이 밀어붙였음에도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쉽지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아래서 노사정 합의의 주요 내용인 주 52시간제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 등을 보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여야 합의로 너무 쉽게 입법됐다. 일요일 등 휴일이 1주일에 포함되지 않아 1주일이 휴일을 제외한 6일, 5일이라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을 비판하며 그 행정해석을 철회하라고 주장하던 민주의 당 의원들은 태도를 바꿔 행정해석 철회가 아닌 근로기준법에 1주일은 휴일을 포함해 7일이라는 황당한 입법을 추진해 의결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등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니 두려운 것이다. 이렇게 나처럼 두려워 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이 “이런 국회 필요 없다!”고 외쳤던 것일까. 그랬다면, 상황 파악을 못해 잘못된 대응방안을 찾는 실수는 면할 수도 있을 것인데.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오늘도 이 나라 노동운동이 촛불집회장에서 함께했던 날의 추억을 떨쳐 내지 못한 채 여전히 보수의 당 정권 아래서보다는 노동개악을 덜 하도록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의 깃발이 중심 없이 흔들려서는 세계 노동운동의 희망을 만들 수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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