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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전투
▲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칠레 전투>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이 영상은 1970년대 칠레에서 전개된, 혁명과 반혁명을 둘러싼 자본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의 사활을 건 계급투쟁에 대한 기록이다. 이 계급전쟁에서 노동계급과 민중은 미 제국주의 및 그들과 결탁한 토착 자본가계급에 처절하게 패배했다. 이 계급전쟁은 아옌데 민중연합 정권이 집권한 1970년에서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1973년까지 4년에 걸쳐 전개됐다. <우리 승리하리라(Venceremos)>라는 노래를 부른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는 피노체트 쿠데타 과정에서 총살된다. 그 후 13만명에 이르는 사람이 체포됐다.

이 영상은 전체가 3부작으로 돼 있는데, 1975년에서 1978년에 걸쳐 제작됐다. <칠레 전투>는 아옌데 대통령의 민중연합 정권이 피노체트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기 전 아홉 달 동안 격동하는 칠레의 모든 기억을 담아 놓은 소중한 역사 다큐멘터리다. 어떤 영화 제작 경험도 없던 감독 파트리시오 구스만과 그의 동료 5명은 16밀리미터 카메라와 구식 녹음기 한 대, 코닥 필름과 자연조명만을 갖춘 채 혁명과 반혁명의 치열한 공방전을 누비며 날것 그대로의 칠레 역사를 채록했다. 촬영된 필름은 민중연합 정권이 막을 내린 뒤 6개월의 밀반출 끝에 쿠바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편집돼 칸영화제에서 <칠레 전투>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후 40년이 더 지난 지금 이 다큐멘터리 영상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다뤄진 일들이 현재 칠레에서 진행되는 사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노체트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지금 손자·손녀들과 함께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다.

칠레에 지금 1970년대 계급전쟁 이후 가장 거대하고 치열한 계급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대통령 자신이 이것을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이 계급전쟁은 아주 작은 일을 계기로 폭발했다. 지난달 1일 칠레 세바스티안 피녜라 정권은 지하철 요금을 약 3.5%, 50원가량 인상했다. 저항은 10월7일부터 중고생들의 무임승차 행동으로 시작됐으며 18일부터 시가전으로 격화했다. 사람들은 이 봉기에 대해 단순히 지하철 요금이 인상됐기 때문이 아니라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이 그 배경이라고 말한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1%의 인구가 이 나라 부의 33%를 차지하고 있고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국민 하위 50%는 이 나라 재산의 2.1%밖에 가지지 못한다고 한다. 또 칠레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이 나라의 최저임금은 30만1천페소인데, 노동자 절반이 40만페소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나라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나라고, 부유하고 질서 잡힌 나라로 알려져 있다. 몇 해 전 국내 유수의 진보언론 기자가 베네수엘라와 칠레를 방문 취재한 다음 르포 기사를 썼는데, 베네수엘라는 치안이 불안하고 질서가 없어서 살 수 없는 나라고 칠레는 택시 바가지 요금 같은 것도 없고 질서가 잡혀 있는 살기 좋은 나라라고 보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좋은 나라에서 노동자·민중이 지하철 시설을 불태우고 가두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화염병을 던지는 등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하지만 칠레 민중의 봉기를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 때문으로 보는 것은 경제주의적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경제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을 만들어 내며, 이렇게 배제된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민중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디언>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 18세 학생은 더 많은 존엄성 있는 삶을 위해 싸운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고 있는 모든 것, 이 나라의 경제와 정치 및 사회 전체를, 그 체제를 문제 삼고 있다. 그들은 “우리는 부자들에게 지배되고 있다. 이제 그것을 끝장낼 때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봉기를 단순히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반대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피상적이다. 피노체트가 도입한 신자유주의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피노체트 이전에도 이 나라는 경제적으로 불평등했고, 이 나라 민중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누리지 못했다.

이 봉기는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 정권이 장관의 3분의 1을 교체하고 경제·사회정책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고 발표했음에도 민중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참에 헌법을 개정해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철저하게 개조하려 하고 있다. 민중이 실질적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헌법에 의하지 않고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나라 민중은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다. 피노체트 군사독재 정권이 물러났어도, 진보적인 정권이 집권했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40년 전 아옌데 정권 때 추구했던 것과 같이 민중이 떨쳐 나서서 국가와 사회의 기본 질서를 변혁해야만 한다.

이번 칠레 민중항쟁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선두에 섰다. 지하철 요금이 인상되자 무임승차 운동을 했고, 지하철을 마비시켰으며, 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고 폭력경찰과 군대에 맞섰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이 죽고 수천 명이 구속됐다. 이런 학생들의 전투적 투쟁에 힘을 얻어 노동조합이 정치총파업에 나섰다. 이렇듯 전투적인 투쟁이 없이 지배계급의 국가폭력과 맞짱을 뜰 수 없다. 또한 노동조합의 투쟁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특권화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학생들이 선봉대였고 각계각층의 민중이 모두 나섰다. 칠레 민중의 혁명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우리는 그 혁명을 열렬히 지지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투쟁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김승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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