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정치의 현재를 평가하고 한국노총의 정치전략을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전문가들은 한국노총의 정치활동을 “적극적이지 않다”고 평가하며, 내부 갈등을 고려하느라 이미 구축한 정당 내 지분과 채널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쓴소리했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과 대외협력본부가 31일 오후 한국노총회관에서 ‘미국과 일본 사례를 통해 본 한국노총 정치활동의 현주소와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이경호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한국의 노동정치는 다양한 실험이 있었으나 실패와 정체를 이어 오며 발전적 전망을 가지지 못했다”며 “유럽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노조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구현하고 있는지를 되짚어 보고 한국형 노동정치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혜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미국 노동운동은 민주당과 결속해 끈끈한 연대를 통해 성장해 왔다. 노조는 정당에 막대한 선거자금과 인력을 제공하고, 민주당은 노동자 보호와 공공정책 변화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이후 노조와 민주당이 결속하며 민주당 집권까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양자 간 이익교환은 강화됐다. 이렇듯 미국과 일본 노동운동은 중도 자유주의를 의미하는 유력 리버럴(Liberal) 정당과의 연계를 통해 노동자 이익을 보호하고 공공정책에 영향을 행사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미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노총이 선거자금이나 조직표·선거운동 등 당에 제공하는 자원이 분명하지 않은 가운데 해당 정당이나 후보가 노동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상징성 부여 정도에 머물고 있다. 김진엽 정치발전소 사무국장은 “더불어민주당이 한국노총에 의존하게 만들기보다 한국노총이 당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직 내 정당 지지를 둘러싼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정당 내 이미 확보해 놓은 지분과 채널을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발을 빼고 있는 형편”이라며 “노동친화적 정당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현재의 행정적 채널 역시 한국노총 요구에 힘을 싣지 못하며 관 주도에 이끌리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한국노총이 할 수 있는 적극적인 노동정치는 기존에 확보해 놓은 정당 채널을 더 견고하게 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당 안에 산재해 있는 한국노총 각 채널들 간 팀플레이가 가능하도록 조율구조를 만들고, 의원 배출이 개인의 진출이 아니라 공식적인 결정과 지원 속에 ‘한국노총 의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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