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명상서적을 읽다 보면 종종 죽음에 관한 얘기들이 나온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고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이라는 것, 생명을 지닌 것들은 모두 태어남과 동시에 조금씩 죽어 가고 있다는 것,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죽음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인 양 살아가고 있다는 것, 만약 당신이 당장 내일 아니면 일주일 후에 죽는다 해도 지금처럼 살 것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것. 이것이 죽음에 관한 얘기들의 공통적인 요지다.

무척 와 닿는 말이라 읽을 때마다 그렇게 살리라 다짐하지만 안타깝게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면서 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죽음은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 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매 순간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죽음이 똑같지는 않다. 병으로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도 있고 사고로 갑자기 떠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긴 하지만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노인의 죽음과 젊은이의 죽음은 다르다. 이렇듯 우리에게 모든 죽음이 같은 무게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앞날이 창창해 보였던 젊은이의 사고에 의한 갑작스러운 죽음.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은 그런 것이었고 그만큼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의 죽음은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해 줬다. 그 과정에서 죽은 김용균은 정치권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 죽어 가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다시 살려냈다. 올해 10월26일에는 김용균재단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거리에서, 기자회견장에서 동분서주하시던 어머니 김미숙씨 또한 재단 이사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자리에는 사랑하는 아들·딸·동생을 잃었지만 주저앉지 않고 다시 태어난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가족들도 함께했다.

김용균재단은 산업재해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산재사고가 났을 때 피해자와 피해 가족들이 사고에서 무엇을 확인하고 요구해야 하는지를 조언하고 대응하도록 지원하기로 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운동도 함께하기로 했다. ‘다시는’ 제2·제3의 김용균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불시에 산재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잠기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도록….

그런데 김용균재단 출범대회 이틀 전 아파트 13층에서 케이블 TV를 수리하던 노동자가 추락해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루에 대여섯 명의 노동자가 죽어 가고 있으니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때로는 죽음이 너무 흔해서 무감각해져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때로는 알려진 몇몇 죽음을 기억하느라 알려지지 못한 훨씬 더 많은 죽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죽음을 미화하기 위한 것도, 생의 허무를 강조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제대로 된 삶을 위한 것이다. 제대로 된 세상을 위한 것이다. 죽음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세상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 준다. 삶에 대한, 세상에 대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청년노동자 김용균이 김용균재단으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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