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문재인 정부 사회적 대화를 “관료적 또는 관치적 코포라티즘”이라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사회를 기치로 내세웠지만 “노동 없는 민주주의 시대”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그런 가운데 사회적 대화로 대표되는 코포라티즘도 “노동 없는 코포라티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노동 없는 코포라티즘”

27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한국 사회와 노동’을 보면 최장집 교수는 연구보고서 ‘한국의 노동운동과 노사정 관계’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확대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코포라티즘을 제시했다. 코포라티즘은 ‘조합주의’ 또는 ‘노사정 3자주의’ ‘노사정 협조체제’ 같은 말로 번역된다.

최 교수는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며 “개인이나 노동자들이 공동의 이익이나 요구를 조직하는 이익결사체”로 코포라티즘을 정의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실현된 코포라티즘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국가가 노동을 강하게 억압하거나 통제하면서도 산업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조활동을 허용했던 군부독재 시절 ‘국가 코포라티즘’, 형식적으로는 국가 코포라티즘을 벗어났지만 실제로는 노동배제가 계속됐던 김영삼 정부 이후의 ‘관치적 코포라티즘’이다.

최장집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존중 사회와 사회적 대화를 표방하면서 지금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설립한 것에 대해 “민주적 또는 네오 코포라티즘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대를 불렀다”고 밝혔다. 노동현장 출신인 문성현 위원장을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과거와는 달리 조직노동과 기업대표들이 협의·합의하고, 다시 정부와 협의해 정책으로 결정하는 모습을 기대한 것이다.

최 교수는 “(경사노위는) 노사가 문제를 다루고 정책을 실제로 결정하는 코포라티즘 기구와는 거리가 멀다”며 “관료적 결정에 구색을 맞추는 ‘관제적 또는 관치적 코포라티즘’ 이상일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주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방안을 경사노위에서 논의하는 등 정부 중심 사회적 대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기업과 노동운동, 서로 인정해야”

그는 한국 코포라티즘에 노동이 없는 이유에 대해 “대기업이 산업화 추진자인 권위주의 국가의 하위 파트너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여전히 노동정책을 성장정책 밑에 두고 있다. 자연스럽게 대기업의 인식도 산업화 시기에 머물러 민주화된 시대에도 노동자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거나 노조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장집 교수는 “국가가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이 노동을 동등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도록 만드는 일”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사용자단체가 조직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뇌물창구 단체로 전락한 전경련 혹은 대한상의·한국경총이 사용자단체로서 자립성을 가지게 하고, 기업의 이익을 들어주는 대신 노조를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반대로 노동운동 진영에도 대기업을 인정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기업의 노동관이 먼저 변하고 민주적 노사관계가 정립되면 자연스럽게 대기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겠지만 노동운동이 먼저 인식을 바꿀 수도 있다”며 “반노동운동 정서가 강한 한국에서 급진적인 노동운동은 더욱 고립되기 쉽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운동이 민주화의 선봉장이고 역사 변화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생산자 집단이자 이익결사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걸맞은 행위양식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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