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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부패로 전락한 공정
▲ 김형탁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대통령 시정연설에서 ‘혁신’이라는 단어와 함께 ‘공정’이 거듭 강조됐다. 조국 사태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에서 분열된 국론을 다시 모으기 위해 서둘러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사회 실현 과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제로 등장했기에 박수를 치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연설문 전체에서 ‘공정’은 불편한 모양새로 끼워져 있다. 공정 그 자체로서의 적극적인 의미는 사라진 채 ‘불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부패와 비리, 반칙 같은 수준의 개념으로 다뤄지고 있을 뿐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고 밝혔을 때의 공정은 사회 작동원리로 제시된 것이지만, 이제 말하는 공정 속에서 그러한 철학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이야기한 존 롤스는 가진 자들의 기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으려면 그 사회에서 가장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의 기대치도 함께 향상될 수 있을 때라야만 정의로운 사회라고 했다. 그러나 시정연설에서 그 정신이 사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존중과 소득주도 성장이 연설에서 사라졌다. 소득주도 성장이 가능하려면 생산과 분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선순환이 있어야만 한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와 노사문화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에 혁신가 정신으로 시행착오와 설득을 통해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과제였다. 그러나 이제 이를 포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재정투자는 혁신성장을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그것이 안정적인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는 고리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성장에서 배제되는 이들을 위한 ‘포용’ 정책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책을 제시할 뿐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아니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혁신주도 성장으로 노선이 변하고, 낙오자들은 구제의 영역에 갇히게 됐다.

정부 성장정책이 기술·기업 중심으로 수립되고 있다. 한국 사회 성장이 가능했던 비결은 학습능력이 뛰어난 수준 높은 노동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 뛰어났던 노동력이 잠재력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연구개발비 투자는 국민 소득수준 대비 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결과로 노동자들은 기술에 종속돼 잉여인력으로 전락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기술중심주의는 재벌대기업 영향력과 중소기업 종속성을 더욱 키울 뿐이다. 또한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 유지될 뿐이다. 작업장 혁신은 사람이 핵심이다. 특히 고도의 기술이 아니라 적정기술이 필요한 중소기업에서는 작업장 노동자 역량에 따라 혁신이 좌우된다. 작업장에서 혁신과 노동은 한 묶음이 된다. 혁신을 통해 생산성도 높아지고 노동자 생활의 질도 높아진다. 아마 소득주도 성장은 이것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은 여기에 투자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할 곳은 잘나가는 대기업이 아니라 노동자의 창의적인 역량을 키우기 위한 사업이다. 그게 성장을 위한 정부의 공정한 역할이다.

교육 불공정에 대한 대책도 비리를 근절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공정하고 창의적인 교육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가지고 수많은 논의를 했는데, 대통령의 연설로 갑자기 중심축이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드러난 불공정·비리 문제로 전환됐다. 정시 비중을 상향하겠다는 언급은 그러한 인식의 연장이다. 정시 비중을 높이면 수능 비중을 높이게 되는데, 이는 다시 학원에서 문제풀이 족집게 과외를 성행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가진 이들은 돈과 인맥으로 현재의 제도를 활용해 왔다. 진보적이라고 인식됐던 인사들조차 그 활용에 남다른 능력을 보였으니 많은 이들이 엄청난 박탈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수능은 공정한가. 수능은 더더욱 가진 자들의 게임이 될 것이다. 현재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원인을 밝혀내고, 제도 악용 소지를 막고, 제도에 적합한 교사 역량을 키워 내기 위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기다. 제도를 간단하게 만들겠다는 편리함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교육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정말 이 정부가 공정의 가치를 중요시한다면 불공정이 아니라 공정의 원리를 철저하게 인식했으면 한다. 공정을 바라보는 능력이 출범 초기에 비해 점점 후퇴하는 모습이다. 조국 사태로 공정을 인식하는 기준마저 완전히 흔들린 것 같다.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htkim82@gmail.com)

김형탁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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