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승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파란색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다 보면 조계사 앞에서 버스를 갈아타게 됩니다. 항상 만감이 교차합니다. 조계사 앞에서 아직도 매일 1인 시위를 하는 민주연합노조 조계종지부 동지들은 불교계에서 최초로 진행되고 있는 전방위적인 노조탄압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조계종지부는 지난해 9월 불교계 최초로 노조를 설립했는데, 지부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노조설립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해고됐습니다. “노조를 인정하라” “해고자를 복직시켜라”.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당위적인 명제를 들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아직까지도 노조를 백안시하는 사용자의 민낯을 보여 주는, 한국사회의 볼품없는 단면이라 생각됩니다.

조계종에는 종무행정을 담당하기 위한 평신도 노동자, 종무원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종단은 노조만큼은, 특히 민주노조만큼은 두 눈 뜨고 바라볼 수 없다고 합니다. 노조가 설립되자마자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발표해 노조와는 그 어떠한 대화조차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종단 내 각종 기구를 통해 “조계종지부는 종단을 음해하기 위한 정치세력” “종단은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비방이 담긴 공식 성명을 발표해 왔습니다. 부처님의 자애를 실천하며 법도를 설파해 온 종단이, 유독 노조에 대해서만큼은 비방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1년간 그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단체교섭을 거부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노조간부들은 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을 고발한 뒤 해고를 비롯한 각종 징계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자승 스님에게는 하이트진로음료와 종단의 생수 사업인 감로수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종단에 지급돼야 할 로열티를 착복했다는 혐의가 제기됐습니다. 관계자의 직접적인 증언에 의할 경우 자승 스님은 종단에 지급돼야 할 로열티 일부를 ‘주식회사 정’에 지급하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종단의 설명에 의하면 주식회사 정은 순수한 마케팅 회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고발 과정에서 확인한 각종 증거를 보면 여기는 매우 재밌는 회사입니다. 강남의 성형외과 병원에 사업장이 소재한 마케팅 회사, 자승 스님의 친동생이 3년간 이사로 재직한 회사, 유일한 이사는 80세 노인인 회사, 유일한 감사는 자승 스님이 운영한 은정불교문화재단 이사로 재직한 성형외과 의사인 회사. 누가 봐도 정상적인 회사가 아닙니다. 하이트진로음료 관계자의 직접적인 증언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승 스님의 특수이해관계인이 개입한 증거가 명확한 상황에서 자승 스님의 배임을 의심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상식과 경험칙에 반하는 것입니다.

조계종지부 조합원들은 불의에 눈감지 못하고 자승 스님 비리를 고발했습니다. 본래 감로수 로열티는 신도들의 삼보정재(三寶淨財)를 통해 형성된, 승려복지기금 조성에 사용해야 할 소중한 기금이었습니다. 그런 소중한 기금이 자승 스님과 특수이해관계가 존재하는 회사에 흘러갔다는 사정은 신실한 불자, 종무원 입장에서 묵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조계종지부 간부들은 고발 바로 다음날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며칠 뒤에는 대기발령장소가 변경돼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로 유배됐습니다. 대한민국 불교계 최대 종단은, 부처님의 자애를 설파해 온 종단은 노조탄압의 선두주자로 변모했습니다. 종단은 노조의 합리적인 문제제기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는커녕 조합원들을 징계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이후 간부들은 확정적인 징계통보를 받았습니다. 지부장·지회장에게는 해고, 사무국장에게는 정직 2개월, 홍보부장에게는 정직 1개월. 그야말로 노동조합 직책순서에 따른 징계였습니다. 징계 내용도 가관이었습니다. 자승 스님을 고발한 것뿐만 아니라, 부당징계에 항의하는 등 정당한 조합활동을 한 것까지 징계사유로 삼았습니다. 결국 종단의 징계는 민주노조를 고사시키려는 전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기자들에게 “방송의 공정성 확보”라는 목표가 중요한 근로조건이 되고 조합활동의 목적이 될 수 있듯이, 신실한 불자들인 종무원들에게는 “종단 사업의 투명성 확보”가 중요한 조합활동의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부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종단 사업의 투명성을 지키고자 자승 스님의 개인 비리를 고발한 뒤 상상도 못한 중징계에 직면하게 된 현실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종단은 노조로 인해 종단의 명예와 위신이 실추됐다고 주장하지만, 종단의 품격을 떨어뜨린 것은 노조에 대해 보여 온 그간의 적대적인 태도, 그리고 부당징계였습니다. 민주노조를 인정하고 부당징계를 철회하는 것. 그것만이 종단의 품격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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