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28일째입니다.” 초췌하기 그지없다. 나름 어울리는 수염이 움푹 팬 볼을 가리고 있었기에 다행이다. 지난주 만난 이지웅 한국도로공사노조 위원장의 모습이다. 현관 입구에 거적을 깔고 홀로 본사를 지키고 있었다. 누굴 상대로 무엇을 지키기 위한 싸움인지. 김천을 찾아갈 때만큼이나 위원장을 만나고 본사 현장을 둘러본 마음이 착잡하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인지. 공부와 현실의 차이는 무엇인지.

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문제는 보도를 통해 알려진 지 너무 오래다.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화 이행의 당사자는 사용자인 도로공사와 해당 비정규 노동자다. 당연히 이강래 공사 사장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전면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납업무는 자회사에 맡긴다”는 입장 이외에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그 어떤 적극적인 모습도 보여 주지 않았다. 무책임의 극치다.

지난달 28일 “도로공사 사태 해결 촉구”를 위해 조합원과 시민 1만여명이 청와대 앞에 모여 결의대회를 열었다. 전국 모든 사업장 대부분 조합원들이 한자리에서 한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그만큼 현 사태가 위급하다는 말이다. 청와대 앞까지 찾아온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대통령에게 조합원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나. 연대를 위해 찾아온 연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노노 간 갈등을 방관하는 정부와 사용자를 소리 높여 규탄했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 나가는 정부가 앞장서 책임 있는 모습과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라고 외쳤다.

그날 집회에서, 그리고 도로공사 현관에서 만난 이지웅 위원장이 가장 강조한 말은 ‘비폭력 평화’였다. “비폭력, 평화로 이뤄 낸 촛불혁명의 정신을 잊지 말자”고 했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조합원들의 간절한 소원일 게다. “지난 9월 이후 지금까지 도로공사는 그야말로 전쟁터입니다.” 도로공사노조 한 간부가 해 준 말이다. 같은 노동자가 분명한데도 욕설과 폭행을 당했고, 아직까지도 어안이 벙벙하단다. 평화롭게 지켜 온 사업장이 톨게이트 조합원들도 아닌 ‘외부인들’에게 점령당했다고 한다. 필자가 본 본사의 모습도 전쟁터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언론에서조차 제대로 다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합원들의 상처가 더 크고 깊습니다.” 최근에는 자신의 일터를 지키겠다는 조합원들을 ‘구사대’라 거짓보도한 언론도 있었다. 하지만 위원장으로서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적어도 더 이상의 물리적 충돌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더 이상의 갈등을 키워서는 안 된다고, 노노 간 갈등은 절대 안 된다고. 그 상대는 사용자와 정부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사업장 내 비정규직을 시작으로 이른바 외주용역까지, 사실상 대부분 사업장에서 정규직 전환이 마무리됐다.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화 정책은 우리 노동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숙제를 남겼다. ‘반쪽짜리 정규직’이라는 딱지다. 기간제 선생님들은 아예 전환에 실패했다. 도로공사 사태에서 보듯이 ‘또 하나의 비정규직 자회사’ 설립방식에 대한 불만과 의심은 여전하다. 원인은 뭘까.

기본 원칙을 정하지 않은 까닭이 크다. 고용은 안정됐다고는 하지만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은 여전하다. 형평성 문제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면, 그때 누릴 수 있는 노동조건이 정규직에 상당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기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기존보다 조금 나은 급여수준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피해를 입었다. 그동안 보장받았던 정년이 단축되거나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급여를 조정당하기도 했다. ‘이럴 거였다면 그냥 둘 일이지’라는 적지 않은 원망도 여전하다. 도로공사 사태에서 보듯이 많은 사업장의 정규직 전환 과정은 노노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자연히 예상되는 이와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형평성을 보장할 기준을 미리 정했어야 한다.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면 고용안정이라는 1차적인 목적에 앞서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의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법률과 제도 내에서는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분명한 근거가 없다. 정권 초기 헌법 개정운동이 활발했다. 노동계와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에도 위 선언이 담겨 있었다. 만약에 헌법이 개정돼 ‘노동가치에 대한 기본원칙이 헌법에 담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점점 더해진다. 그랬더라면 보다 온전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았을까.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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