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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의자 윤석열과 ‘사회’주의자 조국
▲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

제목에서 따옴표를 친 시장과 사회는 두 사람이 '자신들의 인식에서 염두에 두고 일상에서 실천하려는 바'라고 필자가 이해하는 부분을 강조한 것이다. 취임식에서 윤석열은 법집행에서 우선적으로 중시해야 할 가치는 공정한 경쟁질서의 확립이라면서 시장경제 질서의 본질을 지키는 데 법집행 역량을 더 집중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윤석열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프리드먼 부부가 쓴 <선택할 자유>를 꼽았다. 프리드먼은 자유방임 경제정책을 채택하고 자동차 기름이나 담배에 대한 세금을 없애고 공립학교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고 사교육을 확산하고 식약품안전청을 없애고 연방은행 역할을 축소하고 친노조 법률을 없애며, 무엇보다 “자립적인 개인”을 억제하는 복지국가를 분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에 대한 위협은 권력의 집중이며, 시장경쟁을 통해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자본주의는 정치권력과 경제력이 결합돼 권력 집중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해 결과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보호한다고 믿었다.

현실은 정반대다. 자유방임 자본주의 시장경쟁은 경제적 자유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고루 나누는 데 실패하고 경제력 집중을 초래했다. 경제력 집중은 정치권력과 결합돼 권력 집중으로 이어졌다. 시장은 국가의 외부에서 자율적으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국가와 한 몸이 돼 사회를 질식시키고 인간을 착취하는 기제로 작동했다.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억압 시스템을 공권력으로 보장한 대표적인 국가 기구가 검찰이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갈라지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시장과 국가의 분리 정립을 추구했다면, 신자유주의는 국가에 대한 자신들의 저주와는 달리 시장과 국가의 일체화를 추구했다. 프리드먼류의 경제정책을 열심히 시행했던 칠레가 대표적이다. 피노체트 군부 정권에서 칠레의 국가는 시장과 한 몸이 됐다. 한마디로 파시즘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던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신자유주의가 거세하려던 대상은 사실 국가가 아니었다. 대중 민주주의의 성과로 국가 안에 들어와 있던 인간들끼리의 관계와 나눔(communication)이라는 ‘사회적’ 요소를 제거하려고 했다. 인간들의 상호부조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보장체계와 인간들의 상호 교류를 특징으로 하는 무상 공교육이 정밀 타격을 받았다.

사회가 지향하는 인간들의 공동선에 복무하는 국가를 분쇄하고, 시장이 지향하는 경쟁 질서에 복무하는 국가로 회귀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쉽게 말하면 국가는 사회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가, 아니면 시장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가의 갈림길에서 후자의 기획을 실천했다. 사회를 국가 통제에 종속시킴으로써 시장의 경쟁 법칙에 복종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성향을 보이는 윤석열과 달리 조국은 청문회에서 대한민국헌법에 담겨 있는 사회주의의 의미와 가치를 환기시키며 사회를 위한 실천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지금도 우리가 사회주의 정책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헌법의 틀 하에서 사회주의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다.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조국이 밝혔듯 경제민주화와 토지공개념 같은 사회주의 정책은 헌법에서 그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헌법이 노동자들에게 단체결성권(결사의 자유)을 넘어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것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연유한 사회주의 정책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조국은 자신을 자유주의자라 밝혔는데 이는 시장의 자유나 경쟁의 자유라는 좁은 틀을 넘어 결사의 자유·표현의 자유·양심의 자유·종교의 자유·사상의 자유 같은 기본권적 자유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은 조국의 자유와 윤석열의 자유가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윤석열에게 모두에게 보장해야 할 자유는 결사·표현·양심·사상·종교의 자유라기보다는 공정한 시장 질서를 보장하는 경쟁의 자유다. 이러한 자유의 실현은 보편적 정의가 아니라 선택적 정의(selective justice)로 충분하며, 누구에게 정의를 적용할지는 보편적 법을 통한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최고 엘리트 조직인 검찰의 의지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

형사 법집행이 국민으로부터 검사들이 부여받은 ‘권력’이라는 그의 취임사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국민은 권력을 대통령에게 위임했지, 검사에게 위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은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대통령의 의지와 명령에 복속돼야 한다. 스스로 권력체라 믿으며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력과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권한에 도전하는 행위는 ‘쿠데타’다.

촛불 항쟁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노동자·민중의 발언권이 개선되면서 시장을 장악한 경제권력과 국가를 장악한 정치권력의 동맹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재벌-수구정당-관료-사법부-검찰-언론-학계'가 씨줄과 날줄로 엮인 기생충 체제(parasite regime)가 흔들린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극우세력들의 음모와 공세는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정권 안팎에서 끊임없이 진행됐다. 우리가 목도하는 검찰 쿠데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은 분기점에 서 있다.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의 동맹이 시장과 국가를 한 몸으로 만들어 사회(국민의 삶)를 교살하는 길. 국민이 국가를 민주화해 시장을 정상 작동시켜 사회(국민의 삶)에 복무하도록 하는 길. 두 길 사이에 전선은 대단히 명료하게 그어져 있다.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 (globalindustryconsult@gmail.com)

윤효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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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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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라이하이트 2019-10-01 21:58:50

    자신이 본인의 생각에 잠식되었는지 먼저 생각해보세요. 합법인가 위법인가와 대의를 위해 법은 희생해도 되는지에 대한 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 대결보다 훨씬 중대합니다. 그리고 위법을 부인하고 것은 민주주의의 부정이고 파시스트들의 생각일 겁니다. 당신이 파시즘적 생각을 가진 건 아닐까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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