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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문제와 사적 유물론
▲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조국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다른 문제들이 배제 또는 주변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고 집권 여당이 말하는 것처럼 조국 문제는 그만하고 민생 문제를 얘기하자는 뜻은 아니다. 조국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더구나 그들은 정치공학적으로 정치 쟁점을 조국 문제로부터 다른 문제로 전환시키려고 할 뿐 진정으로 민생 문제에 대해 노력하고 있지 않다. 한국도로공사 노동자 문제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지난주 <경향신문>에 “하부구조에 무관심한 상부구조”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그는 이 칼럼에서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을 거론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KBS와 MBC 사장 두 분에게 각별히 부탁한다. 조국에 사용한 방송 분량과 에너지의 10만분의 1만 하부구조에 써 주시라. (…) 종편 따라가지 마시라. 그리고 상부구조의 화려함과 뜨거움만 좇아가지 마시라. 하부구조의 공론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게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해야 할 논의가 아니겠는가? (…) 이제, 경제 얘기 좀 하자”고. 자유주의 정당과 자유주의 언론의 이런 모습과 주장을 보면서 민생 문제와 역사유물론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적 유물론을 진지하게 거론한다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관계에 대해서만 언급해서는 안 된다. 사적 유물론의 요점은 자본주의는 하나의 생산양식으로서 초역사적이 아니라 ‘역사적’인 존재이며,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사멸하고 보다 진보적인 생산양식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토대인 하부구조에서 생산양식이 교체되는 것과 연동돼서 국가·법률·이데올로기 같은 상부구조도 새 생산양식의 성격에 조응하는 내용과 형태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적 유물론은 상부구조 변화가 하부구조 변화에 선행해 변혁될 수 있음을 긍정한다. 단 상부구조가 먼저 변혁돼도 하부구조 변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 상부구조는 지속할 수 없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는 이 지점을 보여준 사례다.

자본주의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모든 생산양식은 생성·발전·쇠퇴·소멸의 국면을 거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제국주의 단계로 나아갔고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치렀으며, 이로써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됐다고 해서 현실 자본주의가 쇠퇴하지 않고 발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 이데올로기다. 20세기 4분기에 선진자본주의는 현실 사회주의가 위기를 맞이하는 것과 나란히 저이윤과 저성장의 위기에 직면했으며, 이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축적방식을 채택했다. 그런 반동적인 축적방식을 채택한 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쇠퇴를 보여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신자유주의 착취·축적 방식조차 저이윤과 저성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20세기 말 IT 거품 붕괴를 거쳐 2008년 미국발 금융공황을 맞이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역사상 초유의 제로금리를 만들어 내더니 근년에 들어서는 곳곳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제도화·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경제성장을 회복하지 못했다. 최근 경제신문들은 ‘R(Recession)의 공포’니 ‘D(Deflation)의 공포’니 하는 말을 자주 읊고 있다. 그런 초저금리에도 경기후퇴와 물가하락이 맞물려 복합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 위기는 자본주의 생산양식 안에서 극복될 수 있는가? 극복될 수 있다면 10년 넘게 대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렇게 대불황이 장기 지속되는 것은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와 상대적 과잉생산 법칙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깊은 층위에서는 자본의 과잉착취로 인해 출산이 줄고 인구가 감소하면서 자본이 잉여가치를 증식할 원천이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이 지배하고 착취할 노동력이 감소하는 한 잉여가치 착취도를 높여도 잉여가치량이 늘어나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은 이런 문제를 한 차원 더 악화시킬 것이다. 설사 4차 산업혁명으로 상대적 잉여가치 착취를 증대시켜 총 잉여가치 생산량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노동소득분배가 악화하면 구매력이 감소할 텐데 생산된 잉여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또 분배악화는 인구감소 경향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며 이는 결국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인적 기초를 붕괴시킬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지금 ‘봉건위기’와 같은 ‘자본위기’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생각된다.

저명한 영자 경제신문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18일자 1면을 노란색 바탕으로 채운 뒤 한가운데에 “자본주의 리셋을 해야 할 때(CAPITALISM. TIME FOR A RESET)”라는 검은색 문구를 커다랗게 새겨 넣었다. 그리고 7쪽에 걸쳐 자본주의 개혁 캠페인을 소개하면서 기업이 이윤 극대화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고객·노동자와 함께 나누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불로소득자가 많은 소득을 누리는 ‘불로소득 자본주의’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많은 보상을 받는 자본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를 수정해 구조하자는 것으로서 케인스주의 축적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그런 전환이 가능할까? 불로소득을 줄이면 기업가 이윤을 늘리고 노동소득을 늘림으로써 저이윤과 저성장을 탈피하는 데 다소간 도움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이런 개혁에 성공할 수는 없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2차 대전 이후와 처해 있는 조건이 현격하게 다르다. 당시는 과잉생산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이윤율 저하와 과잉생산 두 가지가 동시에 문제되고 있다. 게다가 임금노예로 살기를 거부하는 출산파업과 인구감소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파이낸셜 타임스>의 자본주의 구조 캠페인은 단지 자본주의가 사멸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로서만 주목할 가치가 있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김승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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