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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 사업 개념
▲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몇 년 전에 남해안에 있는 어떤 조선소가 소송을 제기했다. 이유는 산재보험료율 적용 업종을 변경해 달라는 것이었다. 강선건조수리업에서 임대사업서비스업으로.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이 소송이 대법원까지 갔다. 강선건조수리업은 산재보험료율이 제일 높은 업종에 속하는데, 업종을 임대사업서비스업으로 변경하면 한 해 산재보험료만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회사는 어떤 근거로 임대서비스업이라고 주장한 것일까? 실제로 배를 만들고 수리하는 일은 모두 사내협력업체가 담당했다는 것, 자기들은 사내협력업체에 작업 부지와 장비 등을 임대했을 뿐이라는 것, 원청회사 직원들은 모두 사내협력업체의 작업 과정을 관리했을 뿐이라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회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즉 조선소가 맞다는 것이었다. 결론 자체는 너무 당연해서 논평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론의 근거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근래 대법원 판결 중에서 아마도 가장 뛰어난 법리를 제시한 판결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요약하면 이렇다. 원청이 선박의 생산과정을 “기획”하고, 사내협력업체의 제작공정을 “관리·감독”하는 등 원청의 사업과 사내협력업체의 사업은 선박의 제조라는 “사업목적을 위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어 “경제활동의 동질성”을 갖는다. 이 법리는 노동법이 적용되는 범위로서 사업 개념을 해석함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

사업은 기업과 다르다. 기업은 법인체를 의미한다. 개별 법인체가 개별 기업이다. 보통은 이 법인체로서의 기업이 사용자가 돼 노동자를 고용해서 사업을 경영한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에는 법인체가 노동법의 적용 범위인 사업에 해당한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사업은 기업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업은 사업주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즉 특정한 상품의 생산이나 특정한 서비스의 제공을 위해 물적 요소와 인적 요소를 결합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체이며, 이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 형식은 다양할 수 있다. 법인체 외부의 노동력과 자본을 결합하는 네트워크형 사업구조는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사업 형식이 된 지 오래다. 특수고용·사내하청·프랜차이즈·재벌 등이 모두 네트워크형 사업구조에 속한다.

법은 사업주가 선택한 사업 형식을 존중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법의 목적에 따라 다른 형식으로 재규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부감사법)은 시장과 투자자의 보호를 위해, 별도 법인격을 갖고 있는 지배회사와 종속회사를 마치 하나의 회사인 것처럼 간주해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도록 한다.

또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은 남녀의 직업상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사업주가 임금 차별을 목적으로 설립한 별개 사업을 동일한 사업으로 간주한다.

요컨대 사업의 개념은 언제나 하나의 법인체로 특정되는 것이 아니라 법의 목적에 따라 상대적으로 파악된다(상대적 사업 개념). 남녀고용평등법 사례처럼 필요한 경우에는 입법으로 명확하게 규정할 수도 있겠고, 입법이 없더라도 판례를 통해 법의 목적을 관철할 수 있는 법리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조선소 법리를 좀 더 일반적인 법리로 다시 구성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원청의 사업과 하청(특수고용·프랜차이즈·하청·자회사를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의 사업이 하나의 사업목적을 위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는 경제적 동일체를 구성하고, 이 사업목적을 원청이 기획·관리·감독하는 경우 원청의 사업과 하청의 사업은 노동법 적용을 위해 하나의 사업으로 간주되며, 원청은 이 사업을 지배하는 사업주에 해당한다.

디지털 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네트워크형 사업구조를 하나의 사업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한층 부각한다. 소비자·종사자·중간관리자·플랫폼 관리자 등 여러 개의 매듭으로 조직되는 네트워크형 사업구조는 예전처럼 사업을 법인체와 동일시하는 좁은 해석론으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네트워크 자체를 하나의 사업으로 간주하는 넓은 해석론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인한 직업세계와 사업구조의 변화 그리고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법의 개혁은 이처럼 사업 개념을 재해석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박제성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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