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달 31일 문재인 정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용어가 “우리 노사관계 현실(관행)을 고려”한 “균형 잡힌 대안”이라는 말이다. 실업자·해고자도 기업별노조 가입을 허용하지만 “기업별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해 노동조합 활동이 기업 운영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고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고 조업을 방해하는” 쟁의행위는 금지한다는 식이다.

정부가 스스로 밝혔듯이 정부 입법예고안은 지난 4월15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 의견을 기초로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11월 공익위원 의견과 이를 바탕으로 했다는 지난해 말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 노조법 개정안과 대동소이하다.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를 주도한 공익위원 자신이 인정했듯이, 공익위원 의견 자체가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미달하는 내용이었다. 조합원 범위와 권리는 노조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ILO 기준과 달리 해당 사업장의 종업원이 아닌 조합원의 노조활동과 임원 선출을 제한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ILO 오랜 권고는 수용하지 않고,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을 상대로 한 간접고용 노동자의 단체교섭과 노조활동을 실효성 있게 보호하라는 ILO 권고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다.

공익위원·사용자단체·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우리 노사관계의 현실”이 무엇일까? 노동 선진국에서는 쟁점조차 되지 않는 해고자·구직자 등의 기업별노조 가입이 우리 사회에서 유독 논란이 되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정권하에서 하나의 사업장에 하나의 기업별노조만 허용했던 노동법제의 유산이다. 이는 사용자가 어떤 구실이든 붙여서 노조활동에 앞장선 사람을 해고하면, 그를 노조와 사업장에서 축출할 수 있는 부당노동행위의 편리한 도구로 활용돼 왔다.

정부 입법예고안은 해고자 등의 기업별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업장의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은 노조 임원이 될 수도 없고, 사업장에 출입할 때도 사용자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면에서 보면,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게다가 이런 조합원은 교섭대표노조 결정이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결정을 위한 조합원수 산정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령 조합원을 만드는 것이고, 사용자가 노조파괴를 위해 해고자를 만들어 낼 유인은 계속 남게 된다.

사업장 점거 제한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사업장에 체류하면서 쟁의행위를 하는 관행이 우리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후진적’ 관행인 듯이 떠들지만, 이는 노사관계 현실에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현행 노조법은 이미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계되는 시설’ 등을 점거하는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있고(노조법 42조), 사용자의 시설관리권을 배제하지 않는 부분적 직장점거만 허용한다. 게다가 사용자가 직장폐쇄를 하면 조합원 전부를 사업장에서 쫓아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입법예고된 정부안에 따르면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고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의 쟁의행위”가 추가로 금지된다. 이제 파업 참여 조합원들이 사업장에 모여 집회를 한다거나 다른 노동자들에게 파업 참여를 설득하는 활동까지 ‘불법’ 쟁의행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도 사내하청·용역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이기도 한 원청 사업장에서 집회를 하거나 심지어 1인 시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업무방해죄로 처벌받기 일쑤다.

문재인 정부 입법예고안이 유지하고 싶어 하는 ‘우리 노사관계의 현실’은 한마디로 기업 내에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돕는, 부당노동행위를 용인하는 법·관행이라 할 수 있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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