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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일진다이아몬드지회 파업 현장] 노동자들이 '브레이크 없는 파업열차'에 올라탄 까닭노동자에 고통분담만 강요한 회사에 배신감 … "투쟁해서 권리 찾겠다" 한목소리
▲ 상명관 전경.<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인 다이아몬드. 이 다이아몬드보다 강하고 단단하게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다. 노조파괴 중단과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한 달 넘게 파업 중인 공업용 다이아몬드 제조업체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2일. 한 명의 이탈자 없이 파업대오를 유지하며 38일째 투쟁하고 있는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 일진다이아몬드 음성공장을 찾았다.

서울에서 버스로 1시간20분을 달려 도착한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시외버스터미널. 이곳에서 2.8킬로미터 떨어진 음성군 대소면에 일진다이몬드 음성공장이 있다.

여느 시골 동네처럼 도로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대소공단 삼거리부터 일진다이몬드 공장 입구까지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 근처에 투쟁사업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건물 곳곳에 붙은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업열차에 브레이크 없다." "즐기는 자가 승리한다." 페인트를 묻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붓글씨가 서툴지만 글쓴이의 결의를 보여 주는 듯했다.

조용한 공장에 가득했던 매미 울음소리는 곧 상명관에서 상기된 얼굴로 쏟아져 나온 조합원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묻혔다.

"수고하셨습니다. 푹 쉬세요!"

이날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어진 빡빡한 파업프로그램을 마치고 주말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는 조합원들이 인사를 나눴다.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집에 갔는데도 상명관과 공장 곳곳에 조합원들이 남아 있었다. 240여명의 조합원들은 조를 나눠 2박3일씩 공장에서 농성을 한다. 주말에는 간부들이 농성장을 지킨다.

공장 입구와 가장 가까운 건물인 상명관은 접견실과 회의실·대강당·헬스장·체력단련실이 있는 곳이다. 파업 전에는 회사가 외부 손님을 접대하는 곳으로 썼다. 지금은 파업 전초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 "즐기는 자가 승리한다." 밝은 표정의 조합원들.<일진다이아몬드지회>

지회 사무실은 상명관 1층에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기자를 맞았다. 지회 마스코트인 '몽이'였다. 반려견 몽이를 집에 혼자 두고 나올 수 없었던 조합원이 파업 첫날 공장에 데리고 나오면서 지회 마스코트가 됐다. 임용현 민주노총 충북본부 충주음성지부 사무국장은 "몽이가 조합원들의 사기진작과 심리안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서인지 건물 안에는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조합원들이 탁구·당구를 치거나 스마트폰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장동준(40) 부지회장의 두 딸 유진(12)양과 예령(9)양도 공장에 놀러와 아빠와 탁구를 쳤다. 홍재준(39) 지회장을 "대장 아저씨"라고 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두 아이는 벽에 붙은 대자보를 읽으며 "투쟁"을 외쳤다. 홍 지회장은 대자보에 간혹(?) 섞여 있는 걸쭉한 욕을 아이들이 읽을까 봐 걱정이지만, 어쩌랴. 아이들의 눈은 빛보다 빠른 것을. 그저 머쓱하게 웃을 뿐이다.

대자보에는 "몸 바쳐서 일한 10년, 겨우 최저시급" 혹은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는 회사" "잃어버린 임금, 녹여 버린 상여금, 피땀 어린 성과급여 투쟁으로 되찾자" 같은 문장이 빼곡했다. 조합원들의 울분에는 수년째 분배 없는 성장을 이어 가는 회사에 대한 배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

500가지가 넘는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일진다이아몬드는 불황을 모르는 잘나가는 회사다. 전 세계 부품·소재 기업들이 절삭·가공 용도로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진다이아몬드는 1987년 공업용 다이아몬드 양산에 성공해 1990년대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노동자들이 밤낮 없이 일한 덕에 지금은 미국 DI·남아프리카공화국 E6와 함께 세계 빅3로 자리매김했다.

▲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마스코트 '몽이'.<일진다이아몬드지회>

"아껴야 한다" 회사 앓는 소리에
2015년 임금동결·상여금 일부 수당전환 동의했는데…


회사가 잘나가면서 음성지역에서 '일진다이아몬드' 하면 "급여·복지가 괜찮은 회사"로 소문이 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회사가 달라졌다. 2014년 1월 일진다이아몬드 경영지원실장이었던 김기현 대표이사가 취임하면서부터였다고 조합원들은 입을 모았다.

그때부터 "어렵다"거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회사의 앓는 소리가 계속됐다. 2015년에는 실제 임금이 동결됐다. 같은해 회사는 600%였던 상여금 중 200%를 능률향상수당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지급하기 시작했다.

"하도 어렵다고 하니까 진짜 어려운 줄 알았죠. 조합원들도 임금동결과 상여금 200%를 수당으로 바꾸는 데 동의했어요."

김대권 지회 사무장의 말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듬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임금을 동결했다. 김기현 대표이사에서 정병국 대표이사로 경영진이 바뀐 2018년에도 임금동결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2016년 능률향상수당을 기본급에 포함시킨 회사는 2018년에는 남은 상여금 400% 중 200%를 기본급으로 변경했다.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자 상여금을 쪼개 돌려막기한 것이다.

복지혜택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동호회·기숙사 전기료 지원금과 체육대회·송년회·김장담그기 같은 직원들에게 돈이 들어가는 행사가 먼저 없어졌다. 매년 소소하게나마 챙겨 줬던 창립기념일(1월22일) 선물이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평전 <창의와 도전, 행복한 50년>으로 대체된 해도 있었다.

▲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원가절감을 해야 한다며 조업에 반드시 필요한 장갑·마스크 같은 일회용품을 재활용하도록 했다. 김대권 사무장은 "유해물질이 묻어서 일회용으로 사용해야 하는 장갑을 빨아 쓰라고 하지 않나, 우리 부서에 없는 건 일단 사지 말고 다른 부서에서 구해 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운동이나 다름없다. 유일한 소통창구였던 노사협의회는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회사가 가져온 임금동결안에 도장을 찍는 역할밖에 못했다.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였던 이준영(39)씨는 "그때 흰머리가 생겼다"며 머리를 가리켰다.

"노사협의회를 하면 근로자대표들에게 설명을 제대로 해 줘야 하는데, 회사가 그냥 앉은 자리에서 '사인해' 하는 식이었죠. 두 번째 상여금을 녹인다고(기본급에 포함한다고) 했을 때 회사에 '직원들에게 설명이라도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어영부영 넘어가 버렸어요. 왜 이런 합의를 했냐고 동료들한테 욕도 많이 먹고 힘들었어요. 힘 있는 노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을 때 회사는 호황을 누렸다. 일진다이아몬드는 지난해 매출 1천340억원에 영업이익 152억원을 기록했다. 뒤늦게 각성한 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29일 노조를 만들어 회사에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했다. 불과 열흘 사이에 생산직 조합원 244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비조합원은 몇 명에 그쳤다.

올해 2월에 시작한 교섭은 지지부진했다. 149개 단협 요구안 중 단 9개만 의견접근이 이뤄졌다. 대신 회사는 파업시 대체인력 투입과 전체 조합원의 70%가 넘는 인원의 협정근로자(파업에 참여할 수 없는 노동자) 지정처럼 지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만 했다. 그동안 공장 내 CCTV는 40대가 넘게 추가로 설치됐다.

지회는 4월부터 잔업거부·시한부파업을 했고, 6월26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회사는 사무·관리직들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해 생산을 계속했다. 지회 관계자는 "관리자들을 투입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물량을 쳐내는 식으로 공장을 돌렸다"며 "대체 생산량이 파업 전 조업물량의 30% 미만에 그쳤고 품질도 떨어졌다"고 전했다.

지회는 6월 회사가 유해화학물질 안전교육과 건강검진을 하지 않은 채 관리자들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한 사실을 고발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충주지청은 8월8일까지 해당 공정에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회사는 꾸역꾸역 이어 가던 대체생산을 지난달 24일 중단했다. 관리자들은 전원 무기한 휴무에 들어갔다.

▲ 일진다이아몬드지회

"국소배기장치 돈 많이 든다" 묵살하더니
노조 고발하자 보여주기식 설치


J동으로 이동했다. 1층에는 석유·천연가스 채굴용 다이아몬드(PDC)와 IT기기 정밀절삭에 이용되는 다이아몬드 소결체(CTM)를 만들기 전 작업을 하는 전처리 작업실이 있다. 홍재준 지회장은 "최근에 국소배기장치들이 설치됐다"고 말했다.

전처리 부서에서는 용매와 세척제로 헥산·이소프로필알코올·디클로로메탄·아세톤 같은 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성능 좋은 국소배기장치가 꼭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일진다이아몬드 작업장에는 국소배기장치가 없거나 적정 제어풍속을 유지하지 못하는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노동자들은 원재료·가스·증기·흄이나 헥산·이소프로필알코올 등 관리대상 유해물질에 노출됐다고 한다.

"돈이 많이 든다"며 노동자들의 개선요구를 묵살했던 회사는 6월 지회가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위반 혐의로 노동부 충주지청에 고발하고 나서야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만난 양준용(48·가명)씨는 "20년간 일하면서 계속 요구했던 게 국소배기장치 설치였다"며 "파업하고 고발하고 노동부 점검이 나오니까 그제서야 뚝딱뚝딱 하는 걸 보고 배신감을 넘어 허탈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옆에 있던 김장근(41)씨는 "(새로 설치한 장치도) 무용지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소배기장치가 너무 엉성해요. 용량도 작아서 다 빨리지 않을 것 같아요. 노동부가 감독을 나온다니까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우리 이런 거 설치했다, 면피하려는 거죠. 돈을 쓰려면 제대로 쓰던가, 너무 화가 나네요."

▲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지회 "본사 압박투쟁 강화할 것"
조합원들 "끝까지 투쟁하겠다"


주로 일진다이아몬드를 상대로 투쟁했던 지회는 이제 일진그룹을 상대로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홍 지회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일진그룹 본사에서 변정출 일진다이아몬드 대표이사(올해 3월 정병국 대표이사 임기 만료 후 선임)와 신광섭 공장장을 만나고 온 뒤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변정출 대표이사가 "교섭권한을 공장장에게 넘겨줬다"고 했는데, 신광섭 공장장은 "나 또한 평가받는 사람"이라며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전형적인 시간끌기"라며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친 조합원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노조가 백기투항하기를 기다리는 작전을 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회는 일진다이아몬드 급여날인 5일을 주목하고 있다. 파업 후 처음으로 전 조합원의 월급통장에 '0원'이 찍히는 날이다. 강철 같은 마음으로 흔들림 없이 투쟁하던 조합원들도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 날이다. 홍 지회장은 "처음 파업에 들어갈 때 장기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불안해하는 조합원들도 있을 것"이라며 걱정스런 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날 만난 조합원들은 홍 지회장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임만욱(35)씨는 "재정상태가 바닥이긴 하지만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여기서 중단하면 노조 만들기 이전으로 돌아가 살아가야 하는데, 그건 정말 아닌 것 같다. 투쟁해서 우리 권리를 꼭 찾겠다"고 말했다.

"전 총각이라서 재정적 부담은 없어요." 김호욱(45)씨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회사를 19년이나 다녔는데 그간 아무 목소리를 못 내서 미안하죠. 이렇게라도 먼저 나서 준 동생들이 정말 고맙네요. 끝까지 함께할 겁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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