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정 가재울라듸오 대표

서대문구에 사는 청소년 네 명이 라디오 진행자가 됐다. 웃고 떠들며 자주 가는 마을 맛집을 청취자에게 알린다. 구의원을 만나 학생인권 문제를 놓고 토론도 한다. 가재울라듸오 ‘2교시 마을영역’이라는 코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가재울라듸오는 서대문구 주민들이 방송 제작에 직접 참여하고 듣는 마을공동체 라디오다. 동네 주민총회를 생중계하고 구의회 회의록을 낭송하는 코너도 있다.

166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지난 5월 방송통신공공성 강화와 나쁜 인수합병 반대 공동행동을 출범했다. 통신대기업의 케이블방송 인수합병이 본격화하자 만든 연대체다. 가재울라듸오도 참여했다. ‘나도 방송을 할 수 있다’ ‘우리도 라디오방송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를 모토로 내건 마을 공동체방송 가재울라듸오가 케이블방송 인수합병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수정(36·사진) 가재울라듸오 대표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2013년 11월부터 가재울라듸오가 방송을 시작할 때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장씨는 “케이블방송·마을미디어는 지역뉴스를 가장 가까이에서 잘 다룰 수 있는 곳”이라며 “시의원·구의원을 뽑는 일부터 예산과 정책 결정까지도 모두 지역 단위로 결정되기 때문에 지역주민이 지역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라듸오 사무실에서 했다.

"주민 스스로 목소리 내길 바라"

- 마을미디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경기도 평택 대추리로 농활을 갔다. 당시는 평택미군기지 확장 이전 공사를 위해 행정대집행이 진행됐던 때다. 마을 주민들 저항이 거셌는데 주류 미디어가 평택미군기지 이슈를 다루는 모습은 실제 현장과는 차이가 있었다. 마을 주민의 실생활과 투쟁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매일 한 편의 영상을 찍었고 정부와 마을주민이 합의하기 직전까지 활동은 이어졌다. 이후 대학원에 가려던 진로를 바꾸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했다.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매체를 고민했고 내가 속한 지역주민들과 함께 마을미디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마을미디어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장 대표의 목표는 "지역주민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 대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미디어가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이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가재울라듸오를 운영하면서 지역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도 봤다"며 지난해 마을버스 노선 변경을 두고 서대문구에서 발생한 논란을 마을주민들이 해결한 사례를 전했다.

“서대문구 홍은동은 비탈이 심해 마을버스가 없으면 이동하기 불편하다. 다행히 서대문구 11번 버스가 있어 홍은동 주민은 독립문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서대문구가 11번 버스노선 변경을 추진했다. 독립문까지 나오려면 버스를 갈아타라는 것이다. 주민들 반발이 적지 않았다. 서대문마을넷과 가재울라듸오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논란은 현재 일단락된 상태다.”

"지역뉴스를 가장 가까이에서 다루는 곳 지켜야"

- 방송의 지역성은 왜 중요한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지역 정책에 따라서 주민 개개인의 삶은 많은 영향을 받는다. 아파트가 동네에 들어온다고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아파트로 인해 상권은 물론 도로도 바뀔 수 있다. 이런 결정은 자치구나 면 단위에서 이뤄지는데 사람들은 이런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문제가 생기면 "나라가 잘못 됐어"라고 생각한다. 자치단체를 변화시키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 통신대기업의 케이블방송 인수로 방송의 지역성이 훼손된다고 보나.
“언제부턴가 공영방송인 KBS조차 방송 공공성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구조조정을 할 것인지만 고민한다. 최근 KBS는 경인지역에 있는 KBS 취재본부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공영방송도 이런데 통신대기업이 자율적으로 지역성을 지키겠는가. 어렵다고 본다. 케이블방송을 인수하려는 기업은 지역에서 제작한 제작물을 일정 비율 편성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식으로 지역성 보장을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중앙언론에서 단신으로 소비되고 마는 지역뉴스를 가장 가까이에서 잘 다룰 수 있는 곳은 바로 지역을 거점으로 한 케이블방송·마을미디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