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배상을 판결한 대법원은 식민지배가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일본은 왜 불법적 식민지배에 사과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일본은 매번 같은 답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우문우답을 반복한다.

2차 세계대전 이전 국제관계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국가 주권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20세기 초까지의 식민지를 두고 합법·불법을 따지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자유·평등·주권 같은 개인과 국가의 권리는 특정 시대의 산물이다.

근대 제국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 경로였다. 19세기 이후 제국주의 영토팽창은 봉건제 군주의 정복 야욕과는 다르다. 당대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대응책이기 때문이다. 영국 자본주의는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세계 수준의 시장과 제도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갖추지는 못했다. 19세기 내내 공황이 반복됐다. 영국은 무력으로 식민지를 만들어 종속적 시장을 창출하고 식민지 노동자를 초과 착취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독일·일본 같은 추격성장 국가들도 이를 모방했다. 하지만 식민지 전략은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부터 자본 수익률이 감소했고, 식민지 쟁탈전 속에 혼란도 증폭됐다. 그리고 1914년에 세계대전이 터졌다.

그런데 미국·영국·일본 등 승전국들은 기존 체계의 문제들을 고치지 않고 연장했다. 식민지를 뺏기고 빼앗았을 뿐이다. 미국에서는 2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생산력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생산력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지는 못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또는 산업혁명을 뒷받침할 제도의 부재는 1929년 대공황으로 폭발했다. 경제가 초토화된 독일은 유럽 전쟁을 일으켰다. 공황에 빠진 일본 역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미국에 이길 수는 없었다. 19세기 제국주의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끝에 사라지고 미국 주도의 20세기 세계 자본주의 질서가 이렇게 탄생했다.

이후 국제관계는 케인스주의 제도개혁과 냉전이 특징이다. 케인스주의는 국내에서는 계급타협을, 국제적으로는 달러-금본위제(브레튼우즈 체제)와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금융제도를 만들었다. 소련을 봉쇄하는 냉전 전략은 유럽의 경제재건과 나토, 동아시아의 일본 경제재건과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했다. 박정희 정권의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 체결은 이런 국제질서가 배경이었다. 조약은 한일 관계를 미국 주도 동맹관계로 전환하는 포괄적 협약들이다. 한미일 동맹 속에서 한국은 80년대 말까지 일본기술 모방과 대미수출로 고도성장을 이룬다. 오늘날 조약의 문구 해석을 두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역사 맥락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미국 주도의 케인스주의-냉전체제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위기에 처한다. 자본 수익률 하락 속에 케인스주의는 작동 불능 상태에 이르렀고, 세계적으로 달러-금본위제가 해체됐으며, 규제에서 해방된 금융이 새로운 세계화를 주도했다. 소련 붕괴로 냉전 전략도 해체됐다. 냉전-케인스주의 이후 21세기는 말하자면 금융 제국주의의 시대가 됐다. 이런 변화 속에 일본은 플라자합의 이후 90년대 거품경제가 붕괴하며 장기불황에 빠진다. 한국은 미국의 압력 속에 금융개방을 가속화하다 1997년 국가부도 사태를 겪는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수출대기업의 성장과 국민경제의 침체라는 이중적 경제 상태에 빠진다. 임금정체, 비정규직 확대, 청년의 좌절, 인구고령화, 사회범죄의 증가 등 사회적 위기 역시 두 나라 모두에서 심화된다.

2007~2009년 세계금융위기는 금융의 제국주의 역시 지속 불가능함을 증명했다. 물론 그럼에도 이들의 지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바마는 21세기 금융세계화를 주도한 미국-유럽의 금융시장을 미국-아시아로 이동시키려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한미-한일 통화스와프, 환태평양자유무역지대(TPP) 설립 시도, 그리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포위전략은 모두 이런 맥락이다.

미국은 아시아 패권전략을 위해 일본의 재무장화를 적당히 용인했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더 많이 역할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과 함게 이른바 인도-태평양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 중이다. 트럼프는 미국 민주당과 다르지만 아시아 전략을 근본적으로 기각한 것은 아니다. 일본 아베 정부가 개헌에 자신감 있게 나서며, 한국에 대해서도 고압적 자세를 취하는 것은 미국의 전략과 무관치 않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면서, 일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그다지 실효성이 없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19세기 제국주의 유물을 끌어올려 국민에게 반일 항전에 나서자고 선동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조금도 오늘날의 제국주의에서 벗어날 의도가 없다. 역으로 금융규제를 완화하며 종속성을 심화시킨다.

나는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문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일단락 맺고 오늘날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오늘날의 제국주의·금융세계화와 그것의 몰락 과정이지 19세기 제국주의가 아니다. 한국의 위태로운 경제상황은 우리가 오늘날의 제국주의·금융세계화 문제의 한복판에 있음을 증명한다. 자본주의를 미화하며 모종의 선한 자본주의를 상상하는 것은 위로가 될 수는 있겠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식민지 역사에서 남아 있는 문제들은 우리 민족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 일본과의 갈등은 오히려 문제의 핵심을 비껴나간다.

최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반일 항전 선동은 자신들이 참여하고 있는 금융세계화 문제를 우회하려는 비겁한 선동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을 모두 외국인에게 팔아 버리고, 금융시장 규제까지 무장해제시킨 것이 바로 더불어민주당 정부들이었음을 잊지 말자.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의 매국이 한민족에게 실질적 문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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