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1.13 수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기고
오전 9시 고객과 함께 셔터 올리고 출근하라는 은행박홍배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
▲ 박홍배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

지난 1일부터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적용을 받는 사업장들이 크게 늘어났다.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노동자에게 주 52시간 상한제를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금융권 노동자들이 밀집해 일하고 있는 서울 여의도역 주변 풍경도 달라졌다. 아침 7시 대 조기 출근이 일반적이던 금융권 노동자들의 출근시간이 오전 8시 중후반 대로 바뀌었고, 저녁 6시 이후에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긴 줄이 생겨날 정도다.

그러나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시간 노동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고용을 늘리기 위해 시행한 주 52시간 상한제는 ‘노동자는 곧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악덕 사용자들에 의해 악용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민국 리딩뱅크 중 하나인 KB국민은행의 경우다.

1일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은행의 인사담당 임원은 전국 지점장들에게 메일을 보내 7월부터 ‘정시출퇴근’을 실시할 것을 지시했다. 얼핏 들으면 꿈만 같은 근무 문화를 사용자가 나서서 장려하는 것처럼 들리는 ‘정시출퇴근’ 지시는 사실 사용자들이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기획한 것이었다. KB국민은행의 시간외근무제도는 과거 직원 1인당 월 1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를 부여하던 방식에서 2017년 10월부터 실제 연장근로를 한 만큼 보상하는 제도로 바뀌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림자 노동’이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제도가 자리를 잡으며 1인당 월평균 연장근로시간은 15시간 수준으로 실질보상이 이뤄졌다. 이러한 인건비 증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사용자가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을 인건비 절감 기회로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올해 6월 이전 직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4시간 전후에 불과했다. 물론 기록되지도, 보상받지도 못한 그림자 노동이 존재했겠지만 어찌 됐건 대부분 직원들은 주 52시간을 초과해 노동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또한 사용자는 이미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할 수 없도록 PC를 통제하는 조치까지 취해 놓았다. 그러니 법 시행 이후 KB국민은행이 법을 위반할 가능성은 ‘0’인 셈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신규인력 채용, 업무량 감소 등 어떠한 조치도 없이 기존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만 10% 줄이라고 하니 현장에서는 ‘사람이 무슨 기계도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분통이 터져 나온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해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는 마당에 ‘업무 준비할 시간도 없이 늦게 출근하라’ ‘오후 6시면 무조건 퇴근하라’면서도 실적 목표는 더 높게 내려 주니 ‘차라리 퇴직하고 싶다’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참고로 최근 3년간 KB국민은행의 임직원수는 2016년 2만735명에서 2019년 3월 1만7천650명으로 15%가량 감소했다.

사용자는 ‘정시출퇴근 강요’에 그치지 않고 노동조합과 합의도 없이 일부 본점 부서에 대한 시차출퇴근제까지 단행했다. 법률 해석에 이견이 있다고는 하나 시차출퇴근제를 선택근로제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면 당연히 근로자대표의 서면합의가 필요하다. 법이 아니더라도 협의를 진행 중이던 노사협의회 사측 안건을 합의도 없이 일방 시행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현재 은행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정시출근을 하라는 얘기는 9시에 고객과 함께 셔터를 열고 지점에 들어가서 바로 업무를 처리하라는 얘기다. 영업시간 전후로 문서열람 등 업무 준비도 없이 바뀐 법률이나 상품·규정 변경 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매일매일 고객 상담과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고객 보호는 소홀해지고, 소비자 불편은 증가하며, 금융사고 발생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이 본점과 영업 현장을 점검한 결과 7월 들어 일을 하고도 연장근로 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반려되는 공짜노동이 크게 증가했고, 개인용 노트북을 사용하거나 문서를 반출해 자택이나 카페에서 일을 하거나, 직원들이 출근을 하고도 사무실에 들어오지 못하고 본점 휴게실에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어이없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주 52시간 상한제로 인해 KB국민은행 노동자들은 공짜노동, 눈치노동에 시간외수당 도둑 취급을 받으며 근로조건이 더 악화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인건비 좀 아끼겠다고 영업에 필수적인 업무개시 준비도 하지 못하게 하는 KB국민은행 사용자의 갑질이 점차 다른 금융회사나 공기업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노동시간단축제도 시행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정책에 역행하는 자들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날려야 하지 않을까.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당국의 적극적인 지도와 조치를 기대한다.

박홍배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홍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