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생생한 현장학습을 했습니다.” “수학여행이 제대로인데요.” 아침 일정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날에도 일정 문제로 여행사측과 다소 언쟁이 있었다. 이틀째 되는 날 가이드에게 왜 그런지 설명을 들었다. 관광버스 기사들의 운전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동의했다. 오히려 이들이 택한 삶의 방식에 부러움을 담아 한마디씩 보태기까지 했다. “그래 이게 맞지.” 지난달 잠시 수학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지나는 동안 필자가 한 경험이다.

“버스마다 운행시간과 거리를 측정하고 회사가 곧장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돼 있습니다. 어기면 엄한 처벌이 따르죠.” 가이드의 안내다. 배운 게 도둑질인지라 차창을 지나는 색다른 풍광보다 이 이야기에 더 귀와 눈이 쏠린다. 그저 책에서 보거나 말로만 듣던 유럽의 실제 노동현장을 생생히 경험하고 있다. 그것도 ‘조금 더 빨리 갔으면 하는 습관’을 도저히 버리기 어려운 동승자들과 운전자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좁은 공간에서 말이다.

“그들이 택한 삶의 방식입니다.” 수학여행 단장인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의 표현이다.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서 우리 노동시장처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것이냐, 아니면 이곳처럼 절제된 노동으로 살아갈 것인가. 우리가 말하는 노동선진국은 후자를 택한 것이다. 물론 이들도 오랜 기간 실패와 성공을 반복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보고 있다. 어떤 방식이 더 바람직한가를. 어설프기 그지없는 우리 기준에서 볼 때, 쉽지만은 않은 매우 힘들어 보이는 운전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노동기본권을 충실히 보장받고 있는 이 모습이 더 좋지 아니한가. 사회 모든 구성원이 응원하고 있지 아니한가. 아마도 동기생들 대다수도 이 모습에 공감했으리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노동연구소(Academy of Labor Gmbh)에서 들었던 짧은 강연도 이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독일 금속노조 출신인 강연자는 독일 노동기본권 확충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 줬다. 실업과 요양 등 사회안전망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이 정도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나올 만큼 부러웠다. 특히 최근에 일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 독일 노동시장에 가져오는 충격과 이에 대한 대비에 관한 설명에는 공감이 컸다. 불안정 노동이 증가하고 노동시장이 양극화되고 있었다. 그 영향인지 독일에서도 재작년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됐다. 그전에는 직무급제를 기초로 한 안정된 임금체계가 이어져 왔지만 이제는 최저임금을 법률로 강제할 정도에 이른 것이다.

“노동해방이 아니라 노동에서의 인간 ‘배제’가 더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급격한 기계화에 관한 토론 과정에서 조대엽 원장이 한 발언이다. 필자로서는 처음에는 의아했다. ‘노동해방’을 입에 달고, 노동자들을 위한 최선이라는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독일은 1980년대 초 주 35시간제를 도입한 이래 최근 자동차 제조사업장에서는 20시간대 노동이 거의 정착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을 하지 않는 ‘해방’을 맞이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저희 생각으로는 주간 약 35시간의 노동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데 기여한다고 봅니다.” 주관적임을 전제로 한 발제자의 의견이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4차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현재의 모습은, 어쩌면 인간을 노동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참고로 우리 노동현장 공정에서의 로봇 사용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통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꿈만 같은 ‘35시간’의 의미를 그들의 눈에서 새롭게 보게 된다.

외형상으로는 우리나라가 만들어 내는 국가의 부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그만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상대적 빈곤의 문제를 넘어서서 절대적인 수준에서 노동수입이 감소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우리가 간과했던 기계를 통한 자본축적이 원인이다. 통제할 방법을 급히 찾아야 할 때다. ‘로봇세’ 등이 제안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의 일자리를 기계가 대신한다’는 것은 절대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북유럽도 처음부터 잘사는 그런 사회는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큰 틀에서 나름의 삶의 방식을 정한 것이죠.” 수학여행을 마친 후 조대엽 원장이 한 마무리 얘기였다. 북유럽의 대부분은 19세기까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상당수 젊은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 신대륙으로 넘어갈 만큼 모든 것이 빈약한 사회였다. 그러나 그들이 오늘날 부러움을 사는 모습으로 성장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양보와 타협을 통한 사회적 합의였다고 정리한다. 돌아오는 여정,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사회적 대화의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하나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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