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 수출입은행지부

국책기관의 노동조건은 사실상 정부가 정한다. 노사가 직원 복지확대에 뜻을 모으더라도 정부가 어깃장을 놓는 바람에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경우가 잦다. 한국수출입은행의 경우 간섭과 통제가 유독 심한 편이다. 전체 공공기관 운영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 소속이기 때문이다. 올해 2월 지부에서 18대 임원선거가 치러졌다. 단독출마한 신현호(42·사진) 위원장이 조합원 97.7%의 찬성으로 당선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수출입은행 본점 9층 지부 사무실에서 신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성과연봉제 폐기 투쟁처럼 정부 지침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는 투쟁을 통해 '뭉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조합원들에게 인식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 취임 후 석 달이 조금 넘었다.
“집행부 활동을 처음 하고 있다. 모든 것이 새롭다. 국책금융기관의 경우 노사합의를 하더라도 시행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돼 있다. 여러 현안들을 정치적으로 풀 수밖에 없다. 금융노조 국책금융기관노조협의회 위원장들과 국회·기재부 등을 수시로 찾고 있다.”

지난해 11월 지부 선거공고가 났다. 정작 선거가 치러진 것은 석 달가량이 지나서였다. 몇 차례 선거공고가 반복되는 동안에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2014년부터 지부 비상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던 신 위원장이 나섰다. “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집행부가 갖는 무게감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집행부 공백이 지속되면 직원들의 처우나 복지가 후퇴할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가 임원선거에 출마한 이유다. 시쳇말로 총대를 멘 것이다. 남은 임기 동안 조합원들의 노조활동에 대한 관심과 열의를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은 출장이 잦은 곳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직원들 출장일수는 5천일이 넘는다. 중남미·아프리카 같은 국외 장거리 출장이 많다. 환승을 위한 대기시간까지 포함하면 비행시간만 주당 52시간을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신 위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한 일은 비행시간을 어떻게 노동시간으로 환산할지 기준을 세운 일이었다. 노사는 2개월간의 교섭 끝에 평일 비행시간은 모두 8시간까지 근무시간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주말은 8시간 이하 비행은 6시간으로 인정하고, 할증을 붙여 9시간의 보상휴가를 부여하기로 했다. 8시간 이상은 보상휴가 12시간을 준다.

“서너 번의 약식합의를 거쳤습니다. 첫 번째 합의를 했던 날, 밤에 잠이 안 오더군요. 비교할 샘플이 없었어요. 이정표를 세우는 합의인데 '내가 제대로 한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위원장이 하는 결정의 무거움을 처음으로 느낀 날이었어요.”

-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수출입은행 지방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 여러 금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했다. 영국 컨설팅그룹이 선정하는 서울의 국제금융허브 경쟁력 순위가 그해 6위에서 올해 36위로 추락했다. 어느 나라든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인프라를 집적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만 금융산업을 자체 경쟁력보다는 지역 균형발전 관점에서 보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기업의 수출입이나 해외 진출 등 대외 경제협력에 필요한 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생긴 기관이다. 업무 특성상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면 해외 발주처나 국제금융기관 등 외국 바이어와의 면담이 불가능해진다. 대외경제협력기금의 주요 카운터파트는 외국 정부다. 각국 대사관을 통해 영업을 한다. 수출입은행을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것은 내년 총선을 위한 지역 달래기로밖에 볼 수 없다.”

- 정부가 하반기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입은행의 모든 직원들은 말하자면 사무직원들이다.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회사는 본부에서 일하느냐 지점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급여를 달리 준다고 한다. 직무성과급제는 순환근무를 원칙으로 하는 수출입은행에 맞지 않는 제도다. 정부에서 결국 원하는 것은 호봉적인 요소를 최대한 없애고, 성과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과연봉제의 다른 이름이다.”

- 조합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책금융기관의 복지수준은 노사합의가 아닌 정부 지침에 의해 결정된다. 과거 '성과연봉제 폐기 투쟁'처럼 노조와 조합원이 하나로 뭉쳐 정부 지침에 작은 균열이라도 만드는 역할을 해 보고 싶다. 이러한 경험은 노조활동에 지속가능성도 부여할 것이라 생각한다. 천천히 가도 좋다. 조합원 하나하나의 의견을 듣고 가겠다. 노조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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