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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판정위에서 사업주 의견진술 기회 보장 필요할까조애진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조애진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업무상질병에 대한 심의·판정의 객관성·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은 지역본부별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두고 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운영규정 14조2항은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심의사건의 신청인 또는 청구인·보험가입자·주치의사, 그 밖에 해당 전문가가 심의회의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행정처분에 앞서 이해관계인의 절차적 참여권을 보장하는 것은 민주적 법치국가의 요청에 부합하며, 처분절차를 투명하게 해 사실인정과 법령의 해석·적용을 올바르게 함으로써 처분의 적법 타당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고, 위법한 처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 소송 등 사후적 분쟁을 예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처분의 이해관계인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해야 할까. 현재 질병판정위는 보험가입자인 사업주가 신청하기만 하면, 심의회의 참석과 진술을 사실상 제한 없이 허용하고 있다. 이는 소속 노동자의 질병이 산재로 승인될 경우 보험가입자의 산재보험료가 할증되는 등 사업주가 처분 결과에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진다는 점을 전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시행령 17조(개별실적요율의 적용을 위한 보험수지율의 산정) 3항이 개정됨에 따라 올해 1월부터는 노동자의 질병이 산재로 승인되더라도 보험가입자의 산재보험료가 할증되지 않으므로 사업주는 더 이상 보험료 부담범위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됐다.

법령 개정 이후 사업주가 제기한 (질병)산재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하급심 법원(부산고등법원 2018누23893 최초요양급여승인결정취소)은 사업주에게 산재보험료 할증이라는 불이익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소속 노동자의 질병이 산재로 인정됨에 따라 부담하게 될지도 모르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노동관청의 강화된 근로감독을 받을 가능성 등은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에 의해 보호되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의 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쉽게 말해 소속 노동자의 질병이 산재로 승인되더라도 사업주는 그 승인처분을 다툴 법률상 자격(소송의 당사자적격)조차 없다는 것이다.

법령이 개정됐고 법원의 판결도 개정법 취지를 반영하고 있지만, 유독 근로복지공단 지침만은 굳건히 과거에 머물러 처분 결과에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보기 어려운 사업주에게도 여전히 의견진술권을 부여하고 있다. 문제는 실제 사업주의 의견진술이 질병판정위 심의과정에서 위원들에게 불필요한 편견을 갖게 함으로써 산재 불승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본다. 24시간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야간에만 일하는 노동자가 뇌출혈로 쓰러진 사건이 질병판정위 심의회의에 회부됐다. 주간에 비해 노동강도가 낮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밤낮이 바뀐 노동은 생체리듬을 파괴할 가능성이 높고, 노동시간도 뇌심혈관계질환의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중 만성과로 기준을 상회할 정도로 길었다. 노동자는 병상에 있어 의견진술을 하러 나오지 못했지만 사업주는 주유소 사무실에 설치된 CCTV 영상자료를 들고나와 노동자의 질병이 산재로 승인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야간에는 손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노동자는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놀았고, 주식으로 과도한 빚을 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빠른 시일 내에 빚을 갚아야 하니 주간보다 임금이 높은 야간에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결국 노동자 자신의 최대이익을 위한 자발적 선택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와 같은 사업주 주장에 영향을 받은 일부 질병판정위 위원은 업무상질병 판정 기준에도 불구하고 불승인 의견을 냈다. 만약 위원별 심의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였다면 이해관계 없는 사업주의 의견이 여과 없이 개입돼 처분 결과를 좌우할 수도 있었다.

사업주는 재해조사 과정에서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고 관련 근거를 제출할 기회를 제공받으므로, 보험료 할증이라는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불이익이 해소된 이상 질병판정위가 또다시 사업주에게 의견진술 기회를 제공할 필요는 없다. 사업주의 의견진술은 오히려 업무관련성을 객관적으로 밝히는 데 방해요소가 될 뿐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주의 민원 제기를 우려해 법령 개정에 상응하는 조치를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진술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써 야기되는 민원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것은 근로복지공단의 몫일 뿐, 이로 인해 노동자가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법률상 이해관계 없는 사업주의 의견진술권과 질병에 걸린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동등한 권리라 할 수 없으므로 질병판정위 심의회의에서 사업주에게도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는 조속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조애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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