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전태일기념관’은 늘 열망하는 이름이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그로부터 49년이 지난 오늘도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친다. 반세기 가까이 되도록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지는 사회 구성원들의 숙제였다.

지난 4월30일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시간 전태일을 따르고 기억하는 노동자의 열망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전태일’이 ‘전태일기념관’을 통해 한국 사회를 사는 노동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전태일기념관에서 이수호(70·사진) 관장을 만났다. 이 관장은 전태일재단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1948년 태어난 그는 전태일 열사와 동갑내기다.

오랜 노력 끝에 빛을 본 전태일기념관

- 전태일기념관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한두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아니다. 그동안 전태일을 따르고 전태일처럼 살기 원하는 노동자와 청년, 시민이 기억하고 다짐할 만한 안정된 장소 하나 없어 너무 안타까웠다. 드디어 이런 좋은 자리에, 청계천이라는, 전태일이 일했던 평화시장과 같은 지역에 기념관이 지어져 감격스럽고 벅차다. 개인적으로 동시대를 산 같은 나이의 전태일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다. 아담한 집이라도 생기니까 마음의 빚을 던 느낌이다.”

- 전태일기념관 건립 추진은 오래전에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전태일을 따르고 기념하는 모임이 필요했다. 그런 형식을 갖추기 위해 1981년 전태일기념관 건립위원회를 만들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와 문익환 목사가 건립 책임을 맡았다. 83년에는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이 나왔다. 어떻게든 전태일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구체적인 실행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주체역량 문제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정치적 이념 문제가 컸다. 보수진영과 재벌이 반대했다. 노동자와 시민의 소액후원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겨우 전태일기념사업회로, 전태일재단으로 발전했다.”

2004년 전태일기념관 건립운동이 사회적으로 주목받았다. 이수호 관장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할 때였다. 그때 한국노총 위원장이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2005년 전태일 열사 35주기를 앞두고 양대 노총 위원장들은 “배포가 맞아” 전태일기념관 추진에 앞장섰다. 노동·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이 모여 청계천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를 꾸렸다.

2005년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다리에 전태일동상과 바닥동판이 조성됐다. 동판은 한 장당 10만원씩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전태일기념관은 세워지지 못했다. 경제적·정치적·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15년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그해 3월 전태일재단 이사장을 맡은 이 관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전태일기념관 건립을 제안했다. ‘노동존중 특별시’를 표방한 박 시장은 그간의 사정을 듣더니 “그럼 합시다”라고 흔쾌히 동의했다.

박원순 시장, 전태일기념관 건립 동의

- 지금의 기념관 장소를 찾는 데 힘들었다고 들었다.
“평화시장 앞 전태일 열사 분신자리 부근에 적당한 장소를 찾고 싶었다. 여러 장소를 물색했는데 모두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다 대학로 근처와 지금 기념관 건물부지 두 곳이 최종후보로 올라왔고, 이곳으로 결정됐다. 그 뒤에도 공식절차를 밟고 리모델링을 하느라 2년이 더 걸렸다. 마침내 올해 4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 전태일기념관 건립 과정에서 어떤 인사들이 도움을 줬나.
“가장 큰 공로자는 박원순 시장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얼마나 힘들었나. 전태일기념관 말도 못 꺼내는 시기였다. 그때 박 시장이 결단을 했다.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박 시장이 과감한 결단을 해 줬다. 서울시의회에서도 애를 많이 썼다. 의회에서 중심을 잡아 주니까 서울시도 가능했을 것이다. 2017년 전태일기념관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추진위원장은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맡았다. 리모델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추진위가 중요한 결정을 해 줬다. 양대 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종교·문화·교육 등 각계각층에서 기념관 건립에 참여했다. 노동계가 중심을 잡아 줬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 공무원들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정말 열심히 하더라. 건축담당 공무원까지 함께했다. 책임 있고 정성스럽게 일해 줬다.”

지상 6층 규모의 전태일기념관은 1층 안내데스크·수장고, 2층 공연장·사무실, 3층 전시장, 4층 노동허브, 5층 노동권익센터, 6층 사무실·옥상정원으로 꾸며졌다. 건물 외관에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재탄생한 전태일 열사 자필편지 내용이 눈길을 끈다.

청계천변 따라 ‘전태일거리’ 로드맵 제시

- 공간을 배치할 때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가장 정이 가는 공간이 있다면.
“전시실을 들고 싶다. 상설전시실 외에 기획전시실을 두고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공연장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 설계변경을 하면서 겨우겨우 만들었다. 그새 공연을 많이 했다. 공연 공모도 하고 특별대관도 한다. 무료로 공연할 수도 있다. 연극계에서 특히 좋아한다.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전태일을 이야기하더라.”

- 전태일기념관은 방문객이 참여하고 체험하는 입체적 공간이 돼야 하며, 전태일기념관과 전태일다리, 분신항거 자리와 연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했다. 현재 전태일다리와 전태일동상, 평화시장이 하나의 ‘전태일 블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태일기념관 건립 전에는 모두 그곳에서 체험을 했다. 이제는 기념관이란 안정된 장소에서 교육하고 체험한 뒤 현장에서 느낄 수 있다.”

이 관장은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다리를 거쳐 평화시장까지 ‘전태일거리’를 조성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놓았다. 두 장소는 청계천변을 따라 1.2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그는 수표교 근처에 있는 전태일기념관 옥상에서 청계천변을 내려다보면서 왼쪽을 가리키며 “이쪽으로 쭉 올라가면 전태일다리가 나온다”고 소개했다.

“종로구에는 연예인 이름을 붙인 ‘송해거리’가 있다. 그런데 아직 전태일거리는 없다. 전태일거리를 따라 걸으면서 중간중간에 체험할 수 있는 구조물이나 시설을 설치하고 싶다. 현재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다. 전태일을 가둬 놓지 말자는 의미다. 대중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말자. 거리로 나가자. 물과 나무를 느끼며 힐링할 수 있는 청계천변에 노동의 의미를 부여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년 전태일 50주기에 맞춰 어느 정도 모양이라도 갖추고 싶다.”

 

▲ 정기훈 기자

노동운동을 넘어 사회변혁을 꿈꾼 전태일

- 전태일재단 이사장을 연임하면서 4년 넘게 맡고 있는데.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양대 노총이 전태일재단과 관련해서는 모든 걸 떠나 큰 틀에서 함께하고 있다. ‘전태일 친구맺기’로 정기후원을 하는 노조가 많이 늘었다. 개인적으로 전태일기념관 사업이 본격화하고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면 다른 분에게 맡기려고 했다. 여러 사정이 생기면서 바로 손을 놓지 못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까지 최선을 다해 마지막 봉사를 하자고 다짐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 오늘날 전태일은 어떤 의미인가. 전태일재단의 과제는 무엇인가.
“노동운동이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되 거기에만 갇혀서는 안 된다. 폭을 넓혀서 시민사회와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 노동자 전태일도 중요하지만 변혁을 꿈꿨던 혁명가 전태일, 그 밑바탕에는 풀빵을 나눠 주던 지극히 인간적인 전태일이 있다. 노동운동 차원을 넘어서는 표상이다. 전태일이 꿈꿨던 봉제작업장 ‘모범업체:태일피복’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적대적 관계를 뛰어넘어 함께 잘사는 사회를 대안으로 그리고 있다. 기념관 첫 기획전시회가 ‘모범업체:태일피복’이었는데 관람객이 정말 좋아하더라. 전태일재단은 전태일이 모든 민중의 전태일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연대하고 대안을 찾고 사랑으로 실천하고 자기희생을 통해 책임을 다하는 인간 전태일의 모습을 분명히 해야 한다.”

-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노동문제가 많이 꼬이고 얽혀 있다. 풀기 어려울 것이다. 애는 많이 쓰는 거 같은데 철학과 관점에 문제가 많다. 노동을 아직도 경제의 일부분이나 시혜적 관점에서 본다. 좌고우면하며 눈치 보다가 본질과 시간을 놓치고 있다. 촛불시민이 촛불혁명에 힘을 실어 주지 않았나. 초기에 과감하게 (개혁을) 해야 하는데 이 눈치 저 눈치, 선거가 어떻고 하면서 시간을 다 놓쳤다. 나름 해 보려는 진정성이나 선의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뭔가 모자라다. 확실하지도 과감하지도 않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문제도 그렇다. 적당히 타협하고 주고받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존중 사회’를 내걸었으면 진짜 노동에 대한 올바른 관점, 노동사회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 무조건 반대하는 논리에 밀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촛불시민 힘 실어 줬는데 좌고우면해서야…

- 문재인 정부하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안타까움을 넘어서는 문제다. 민주노총은 내셔널센터다. 비정부기구(NGO)가 있고 정부기구(GO)가 있다. 국가나 정부가 GO의 최고기구라면 민주노총은 NGO의 최고단체에 해당한다. 그에 걸맞은 인정과 대접을 할 때 서로 커 갈 수 있다. 당장 여론이 안 좋다고, 힘이 없어 보인다고, 일개 단체 보듯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터뷰 이틀 뒤인 지난 21일 김명환 위원장은 끝내 구속됐다.

-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문제도 문재인 정부 2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여러 가지 형식적인 문제가 잔뜩 꼬여 있다. 전교조가 중요한 노동단체로서 여러 어려움 속에서 활동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실질적인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시급한 것은 해고자 문제다. 법이나 국회 때문에 안 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대로 싸우고, 해고자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을 위해 싸워야 한다. 진보교육감 지역에서는 상근자나 사무실 문제 등 많은 것을 해결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진행하는 한편 교육의 본질적 문제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현재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학과 유치원 비리 문제를 가지고 외롭게 싸우고 있다. 전교조와 교육단체가 들고일어나 근본적으로 싸워야 할 문제들이다. 정부와 전교조가 법리논쟁 같은 것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았으면 한다. 전교조 합법화는 당연한 것이다. 교섭을 통해 해법을 찾기를 바란다.”

전교조 인정하고 해고자 문제부터 풀어야

- 내년이면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노동의 형태가 극명하게 바뀌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 노동이라며 골치 아픈 형태로 새로운 억압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노동이란 것이 본질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전태일도 그 당시 어려운 노동자와 피해노동자 중심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사회 전체를 바라보면서 노동이 차지하는 위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꾸고 함께할 것이냐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태일은 좁은 의미의 노동운동가가 아니라 사회를 바꾸는 사회변혁가였다. 책임을 다해서 끝까지 실천했다는 점이 부각됐으면 한다.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오늘도 유효하다.”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는 숨은 희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은 하루 15시간의 고된 노동으로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돼 왔습니다. 기업주들은 아무리 많은 폭리를 취하고도 조그마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근로감독관님, 이 모든 문제를 한시바삐 선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기 1년 전인 1969년 12월19일 근로감독관에게 쓴 자필편지 내용은 기념관 외벽에 설치된 아름다운 작품으로 돌아왔다. 작품 이름은 <외침의 창>이다.

-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가 <전태일 평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이어 <태일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 중이다. 애니메이션으로 접근하는 것은 전태일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나 다수에게 다가가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명필름이란 영화를 잘 만드는 제작사와 전태일재단이 함께 제작한다는 의미도 있다. 최선을 다해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다. 내년 하반기 50주기 즈음에 개봉할 예정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노동자 중심으로 노조가 조직적으로 참여해 주셨으면 한다.”

노동자·시민이 자유롭게 찾는 ‘핫 플레이스’ 되길

전태일기념관이 문을 연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방문객이 9천명에 이른다. 하루 100명 이상 기념관을 찾는다. 일반 시민들도 전시실을 둘러보고 간다고 이 관장은 귀띔했다.

노동·시민단체가 기념관에서 행사를 여는 일도 잦아졌다. 이달 11일에는 공모를 통해 노동허브 입주단체로 노후희망유니온을 포함한 7곳을 확정했다. 다음달 1일부터 입주한다. 입주기간은 1년이고 6개월 연장할 수 있다. 기념관이 노동·시민단체와 시민들이 자유롭게 찾는 ‘핫 플레이스’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태일기념관 개관식 참석자들은 “노동존중 사회 중심이 되는 기념관” “노동자가 항상 찾아오는 기념관” “취약노동자를 위한 기념관” “청년노동자를 위한 기념관” 같은 주문을 남겼다. 이 관장 임기는 3년이다. 초대 관장은 전태일기념관의 역할과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전태일기념관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이다. 정치이념과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다수 시민과 함께하는 기념관이 되도록 초기에 확고한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태일의 생애와 정신은 이미 시민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기념관이 노동자와 청년, 서울시민 누구나 와서 쉬고 즐기고 배우는 쉼터이자 학교이자 놀이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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