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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돋보기-아버지·아들·며느리까지 형틀목수, 양재덕씨 가족 이야기] "노가다라고요? 막일이라면 어느 아비가 자식에게 물려준답니까"형틀목수 임단협으로 노동조건 확 바꿔 … 건설노동자 '일자리 대물림' 가능해지나
▲ 정기훈 기자

경기도 수원의 한 빌라에서 3대가 함께 사는 양재덕(62)씨 가족의 아침은 조금 이르다. 동이 트기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 며느리가 함께 출근을 준비한다. 아침 7시까지 현장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건설노동자다. 양재덕씨 가족이 대를 이어 건설노동자가 된 것은 최근 일이다.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회와 사용자단체인 철근·콘크리트공사업협의회가 중앙임금·단체협약을 맺은 2017년부터다. 무엇이 이들을 건설현장으로 이끌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7일 양재덕씨 집에서 사연을 들었다.

대학 나온 아들, 대학원 나온 며느리에게
형틀목수 권한 아버지


아버지 재덕씨는 형틀목수다. 처음부터 목수였던 것은 아니다. 재덕씨는 전북 익산에서 생선도매업을 했다. 사업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번 돈을 몽땅 투자해 식당을 차렸는데 그때가 1997년이었다. 외환위기는 그의 터전을 빼앗아 갔다. 자식들을 고향 어머니에게 맡기고 아내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아이들도 데려오고 싶었지만 서울 연희동에 마련한 집이 너무 작았다. 대문이 어깨보다 좁아 몸을 돌리지 않으면 빠져나가기 힘들었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 많은 익산에 있으면 남한테 의지할 것 같아서 서울에 왔는데, 막상 올라오니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방 하나 구하고 남은 돈 탈탈 털어 한 달간 여행을 갔어요. 상황은 더 힘들어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안정을 찾았죠."

처남이 소개한 일자리를 찾아갔다. 공사장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덕씨는 새벽밥을 먹고 매일 아침 7시까지 현장에 출근한다. 못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망치를 들고 뚝딱뚝딱 아파트를 짓는다.

그의 아들 민석(35)씨도 형틀목수다. 그는 아버지가 서울로 간 뒤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후 지금의 대우전자(옛 대우일렉트로닉스) 광주공장에서 품질관리 사무직으로 취직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된 뒤 경영난에 빠진 대우전자를 채권단이 인수해 2002년 만든 회사다. 2013년 동부그룹에 팔렸다가 2018년 대유그룹으로 매각되면서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민석씨는 회사가 격랑에 휩싸일 때 본 회사 간부들의 부조리함에 신물이 났다. 2017년 사표를 쓰고 말았다. 처음에는 외국계기업에 들어가려고 했다. 영어 이력서를 내밀고 영어로 면접을 봤다. 그런데 최종면접에서 "회사의 그 어떠한 요구에도 응할 자신이 있냐"는 식의 면접관 질문을 받고 입사를 포기했다. 부당한 지시가 싫어 직장을 그만뒀는데, 또 그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단다.

"난 회사와 안 맞는구나 생각했죠. 근데 아이가 세 명이라서 일을 해야 했어요. 그때 아버지가 같이 목수일을 하자고 권하셨습니다." 민석씨는 올해로 3년차 목수 기능공이다.

그의 아내, 남한나(36)씨는 형틀목수 반장이다. 건설현장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15명 넘는 남성 작업자들을 지휘한다. 한나씨는 대학에서 화학,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학구파였다. 민석씨와 결혼한 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청소년상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랬던 한나씨에게 목수일을 해보라고 권한 사람은 시아버지 재덕씨였다.

"계속 공부만 했지 현장 일은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여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시아버지 말씀에 덜컥 용기가 생겼던 거 같습니다. 뭣도 모르고 시아버지·남편 따라 현장으로 갔지요."

학구파 한나씨는 형틀목수계의 떠오르는 샛별이다. 지난해 전국건설기능경기대회 거푸집 종목에 출전해 은상을 거머쥐었다. 초스피드로 반장 대열에 올라섰다. 여성 목수가 건설현장에 첫발을 디딘지 2년여 만에 빨간색 반장 모자를 쓴 사례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건설노동자 대물림 배경에 자리한
형틀목수 중앙임금·단체협약


재덕씨가 아들과 며느리를 건설현장으로 불러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건설현장이 일할 만한 곳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가 만약 건설현장에서 일을 안 했고, 건설노조에도 가입을 안 했다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반대했을 거예요. 자식이 노가다를 한다는데 당연히 안 된다고 하지. 근데 내가 현장을 잘 아니까 자식들도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 거죠."

재덕씨가 20여년 전 건설현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있어도 끝나는 시간은 없었다. 하루 8시간 노동이니, 유급휴일이니 하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다.

"옛날엔 그랬어요. (어두워서) 못대가리 안 보일 때까지 (망치로) 치다가 갔지. 오야지(십장)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돈 주면 주는 대로 받았어요. 제때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지. 지금은 달라요. 우리 목수들도 임단협을 하거든."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는 사용자단체인 철근·콘크리트공사업협의회와 2017년 처음으로 중앙임금·단체협약을 맺었다. 노사는 기능공 일당을 19만5천원으로 정했다. "(건설)현장이 개설되면 조합원을 고용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노동절을 포함한 6.5일을 유급휴일로 하고, 연차휴가를 12일 근무시 반공수, 20일 근무시 1공수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임금협상에서는 기능공 일당을 21만원(올해 1월 기준, 지난해 7~12월은 20만원)으로 인상했다.

재덕씨는 "지금 현장과 20년 전 현장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일하던 장소 바로 옆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진 적도 있고, 경기도 수원 아파트형공장 건설현장에서는 소변을 보는데 타워크레인에 매달린 철근들이 비처럼 쏟아져 황급히 피한 적도 있다. 바로 옆 동료가 떨어져 죽는 것도 봤다. 그 이후로 큰소리만 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어떤 아비가 자식이 험한 곳에서 일하는 걸 원하겠어요. 건설현장이 예전처럼 위험했다면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일해 보라고 권하지 않았을 겁니다. 근데 노조가 있는 현장은 달라요. 위험하면 아예 작업을 시키지 않거든요."

옆에 있던 아들 민석씨가 한마디 거든다.

"여전히 위험하긴 하죠.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바뀐다고 해서 그런지 올해 들어 정말 감독을 많이 나와요. 누가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감독 나온다고 하면 휴게실이나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안전수칙도 철저히 지키죠. 지난해와 올해만 놓고 봐도 일하는 환경이 180도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건설노동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
여성 건설노동자에겐 더 높은 장벽


민석씨는 일당 21만원에 한 달 20일을 근무하고 400만원 정도 번다. 회사 다닐 때보다 오래 일하고 덜 받지만 지금 생활이 더 만족스럽다고 했다.

"회사 다닐 때 저는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일하는 사람 따로, 월급 받는 사람 따로 그런 게 싫어서 자꾸 따지니까 상사들이 저를 싫어했죠. 건설현장은 일한 만큼 정직하게 버니까 좋아요."

민석씨에게 걸림돌은 사회적 편견이다. 그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건설일을 한다고, 목수라고 하면 불편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고 말했다.

아내 한나씨 일당은 24만5천원이다. 여성 건설노동자는 유급 보건휴가 개념으로 15일 일하면 1공수를 더 준다. 20일 일한다고 할 때 한 달 수입은 500만원 정도다. 지금은 노조원들과 일하고 반장이 돼서 덜하지만 처음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힘든 일이 많았다.

"현장에 여러 팀들이 있잖아요. 다른 팀 사람들이 '오빠라고 불러 봐라' '술 한잔 하자'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화장실 문제였습니다. 화장실이 멀어서 같이 일하는 남성 노동자들이 구석에서 볼일을 봐요. 내 등 바로 뒤에서 소변을 볼 때는 '내가 이런 꼴 보려고 그렇게 공부했나' 하는 자괴감까지 들더라고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시어머니가 한집에 살며 아이들을 봐주고 있지만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 토요일에는 오후 3시까지 일하는데, 주말을 온전히 아이들과 보낼 수 없어 늘 미안하다고 했다.

"평일에 오후 5시에 일이 끝나도 몸이 피곤하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애들한테 손길이 덜 가니까 속상하죠."

한나씨는 현장에서 녹초가 돼 집에 돌아오는 것은 똑같은데 남녀의 육아·가사노동에 차이가 있는 것도 불만이다. "남편은 (가사 일을) 잘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이 문제가 부부싸움의 불씨가 되곤 하죠."

내국인 노동자 건설현장 외면하는 이유
폐쇄적인 건설현장 고용구조 때문


재덕씨가 형틀목수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건설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금은 한국인 노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제가 요즘 중국말을 해요.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 중국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더라고요. 요즘엔 베트남 사람들이 더 많아진 거 같아요. 흑인도 종종 보이고요.”

내국인 노동자들은 왜 건설현장을 외면할까. 재덕씨는 부모세대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꼽았다. 부모세대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노가다는 힘들다' '수입도 적고 그마저도 떼이기 일쑤다' 같은 편견이 공고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석씨는 건설업 고용구조의 폐쇄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제가 소득이나 일하는 환경을 이야기하면 지인들이 솔깃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부분 어떻게 하면 취직할 수 있냐고 묻는데 저도 막막하더라고요. 보통 회사는 채용공고를 내고 이력서를 보고 뽑는데 건설현장은 그런 시스템이 없잖아요."

2007년 시공참여자제도가 폐지되면서 공사면허가 없는 십장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민석씨나 한나씨의 임금도 십장이 아닌 건설업체가 직접 지급한다.

그렇다고 다단계 하도급구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견고하다. 노조에 따르면 직업소개소를 통해 형틀목수가 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대부분 지인을 통해 형틀목수의 길로 들어선다. 실제로 건설근로자공제회가 발표한 '2018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건설노동자들은 36.6살에 처음 건설일을 시작하고, 85.6%가 '인맥'을 통해 구직한 것으로 나온다.

최근에는 노조를 통해 일자리를 확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임단협을 통해 조합원 일자리가 보장되자 우후죽순 노조가 생기는 모양새다. 지난해까지 건설노조가 유일한 교섭참가노조였는데 올해는 11개 노조가 형틀목수(토목) 임단협에 뛰어들었다.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이 길어지면서 임단협을 시작하지도 못한 상황이다.

불안한 미래 해결된다면
자식에게 물려주고픈 좋은 일자리 될 것


"자식들이 형틀목수가 되길 원한다면 대물림하고 싶은 생각이 있냐"는 물음에 민석씨와 한나씨는 머뭇거렸다. 솔직히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한다. 한나씨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늘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안 아프고 건강할 때까지 해 보자고 결심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이 든다.

민석씨는 사실 아내가 형틀목수가 된다고 했을 때 반대했다. 건설현장에서 여성노동자가 놓인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미래가 불안하기는 그도 마찬가지다. 건설노동자는 퇴직금이 없는 대신 퇴직공제부금을 붓는데 고작해야 1년에 100만원 남짓이다. 10년을 일해도 1천만원을 넘기 힘들다.

형틀목수 임단협이 이끌어 낸 건설현장 변화는 특별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단계다.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우리나라 건설노동자도 기능인으로서 정당하게 대우받고, 적정임금과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래야 자식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좋은 일자리로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그 갈림길에 서 있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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