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과 우정노조가 20일 오후 대전 한국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듭된 집배원 사망과 관련해 우정사업본부와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국노총>

최근 사망한 당진우체국 소속 집배원 고 강길식씨의 사인이 뇌출혈로 확인됐다. 지난해에만 25명의 집배원이 뇌심혈관계질환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 집배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일 평균 노동시간(7.5시간)보다 약 4시간 많은 11.6시간을 일한다. 올해만 9명의 집배원이 숨졌는데도 장시간·중노동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20년까지 집배원 2천명 증원을 약속한 우정사업본부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쓰러져 가는 집배원들을 외면하고 있다. 현장 집배노동자들은 “더 이상 쓰러지지 않고 죽지 않는 일터를 만들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고 강길식씨 유족 “남편 늘 ‘5분이라도 더 자고 싶다’ 말해”

20일 우정노조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지난 19일 사망한 당진우체국 소속 집배원 고 강길식씨 사인을 뇌출혈로 발표했다. 한국노총과 우정노조는 이날 오후 강씨 시신이 안치된 대전 한국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시간·중노동 구조 속에서 고인이 담당했던 배달구역은 다른 집배원의 배달 몫까지 나누는 겸배가 일상화됐던 곳”이라며 “겸배가 집배원을 사지로 몰아넣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없었다. 집배원 인력증원과 완전한 주 5일제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올해만 집배원 9명이 과로 등으로 숨졌지만 우정사업본부는 ‘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정사업본부는 2017년 집배원 집단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 중재로 전문가와 노사가 참여하는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을 꾸렸다. 추진단은 “집배원 과중노동 탈피와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2019년 1천명, 2020년 1천명 등 2천명을 증원하라”는 정책권고안을 내놨다. 우정사업본부는 수용의사를 밝혔다. 2019년 정규직 1천명을 우선 증원하고, 추가 재정을 확보해 단계적으로 증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강길식씨를 포함한 집배원 9명이 과로 등으로 쓰러졌다. 고 강길식씨의 아내 A씨는 “주말부부였지만 남편은 일이 많아 1시간30분 거리인 집에도 한 달에 한 번 오기 힘들어했다”며 “주말이면 늘 ‘5분이라도 잠을 더 자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집배노동자 장시간 노동철폐 및 과로사·자살방지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20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규인력 증원과 토요택배 폐지 이행을 촉구했다. <이은영 기자>

경사노위, 집배원 장시간 노동 문제 논의하나

집배원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문제가 수년째 지적되고 있지만 우정사업본부와 정부 태도는 미온적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18일 “집배원 노동시간단축과 적정인력 배치방안을 논의하자”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강씨 빈소를 찾아 조문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우정사업본부는 적자만 탓하지 말고 하루빨리 인력을 충원해 집배노동자 노동강도를 완화시켜야 한다”며 “정부가 나서 책임 있게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집배노동자 장시간 노동철폐 및 과로사·자살방지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 사망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정규인력 증원과 토요택배 폐지 이행을 촉구했다. 최승묵 전국집배노조 위원장은 “현장 집배원들은 계속된 죽음을 보며 ‘다음은 내 차례’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며 “죽지 않아도 되는 일터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우정노조와 집배노조는 24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다음달 9일 전면파업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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