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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평의회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뭐라고 해도 상관없다. 다만 내게 작명을 부탁한다면 노동자평의회라 할 것이다. 2000년 금속산업연맹(현 금속노조) 법률원장으로 있을 때 나는 독일 금속노조(IG Metall) 초청으로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산별노조 중앙과 지부를 방문해서 그 조직과 사업 방식을 살피고, 에버트재단과 노동법원을 돌아봤다. 가기 전부터 독일 노사관계와 노동법에 관한 자료를 찾아 공부했지만 막상 가서 노조간부와 노동전문가, 노동법원장 등 판사로부터 경험의 말을 듣게 되자 우리의 노동현실과 비교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노동조합 외에 사업장에서 조직돼 있는 노동자대표조직에 관해서는 논문 등 소개 자료마다 이름이 제각각이었다. 사업장협의회·종업원평의회·노동자평의회·노동자협의회·종업원협의회 등 ‘Betriebsrat’를 어떻게 우리말로 번역해 불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나조차도 어떨 때는 사업장협의회로, 다른 때는 노동자평의회로 이랬다 저랬다 했다. 독일에 가서 이에 관해서 질문하면서도 그랬다는데, 어쨌든 사업장 노동자조직이라니 매우 흥미가 있었다.

2. 지난주 사무실에 배달된 <월간 노동법률> 6월호의 특집 제목이 ‘길 잃은 노사협의회, 새로 쓰는 한국형 근로자대표제도’였다. 우연찮게 그걸 보고서 생각이 나서 이렇게 끄적거리게 됐다.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의해 설치돼 운영되는 노사협의회는 사업장의 노동자조직, 노동자대표제도라고 볼 수가 없다. 노사가 동수로 구성해 운영하는 노사공동의 기구를 어떻게 노동자대표제도라 할 수 있겠는가. 노동자대표기구로서 최소한의 독립성조차 확보돼 있지 않다. 그동안 이 나라에서 노사협의회가 어떻게 운영돼 왔는지를 살펴만 봐도 노사협의회가 노동자대표기구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다. 심지어 노동자의 자주적인 기구인 노동조합에 맞서는 행태를 수도 없이 보여 줬고, 사용자 자본의 도구로 이용돼 왔다. 무노조경영을 위해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은 노사협의회를 활용해 왔던 것인데, 삼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노동자대표기구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노사협의회니, 우리의 경우 근로자대표 지위를 갖는 과반수노조가 조직돼 있지 않다면 실질적으로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대표할 기구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24조3항), 탄력적 근로시간제(51조2항), 선택적 근로시간제(52조), 연장근로(53조3항), 대체휴일(55조2항 단서), 보상휴가제(57조), 근로시간 계산의 특례(58조2항),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59조1항), 연차휴가의 대체(62조), 임산부와 18세 미만자의 야간근로와 휴일근로의 인가(70조3항) 등에서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협의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과반수노조가 조직돼 있지 않다면 별도로 근로자대표가 있어야 하는데, 그 근로자대표를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정함이 없고, 그 법 규정을 보면 상시적인 기구로서 존재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실질적으로 우리 사업장에서 노동자대표기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3. 계약의 자유로 서 있는 이 세상에서 계약 내용은 당사자의 합의로 정해진다. 근로계약의 내용인 근로시간·임금 등도 예외일 수 없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인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합의로 정해야 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 등으로 관여하도록 한 것도 이러한 계약법리로 보자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디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위 사항뿐이겠는가. 사업장에서 근로자에 관련된 사항이라면 근로자대표가 관여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사업장에서 통일적으로 적용하는 근로조건 기준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복무규율 기준, 노동자의 고용,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변동 같은 기업 구조조정 등 이른바 경영권 사항이라고 말하는 것까지도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표기구가 관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보자면 사업장에서 노동자대표기구 설치는 당연한 것이다. 독일의 경우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노동자대표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이 나라가 비정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21세기도 20년째인 오늘에야 이걸 꺼내 말하고 있으니 너무 늦은 것이라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할 말을 해야 한다.

4.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노사협의회는 아니다. 노사협의회는 노동자대표기구도 아니고, 노사공동의 결정기구도 아니다. 도대체가 노동자들이 독립적으로 구성해서 운영하는 기구도 아닌 것이고, 사업장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한 노사기구도 아닌 것이다. 사업장에서 “참여와 협력을 통해 노사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다는 노사협의회는(근로자참여법 1조) 근로자의 교육훈련 및 능력개발 기본계획의 수립, 복지시설의 설치와 관리, 사내근로복지기금의 설치, 고충처리위원회에서 의결되지 않은 사항, 각종 노사공동위원회의 설치 등 5개 사항을 의결사항으로 부여받았을 뿐이다(근로자참여법 21조). 나머지는 협의사항이고, 회사의 매각·분할 등 기업변동 내지 기업구조조정은 아예 협의사항조차 아니다(근로자참여법 20조). 회사를 위해 노동자가 “참여와 협력을 통해 노사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려고 해도 참여하고 협력하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렇게 노사협의회를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에서 노동자가 무엇인지 여실히 알 수 있게 된다. 사업장에서 “참여와 협력을 통해 노사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명목으로 들러리를 서는 것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사업장에서 “참여와 협력을 통해 노사공동의 이익을 증진”을 위한 기구인 것이니,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구일 수도 없다. 만약 사용자와 협력하지 않고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 증진을 위해서 활동하게 된다면 근로자참여법상 노사협의회로서 존재이유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라서, 노동자에겐 노사협의회는 아니다. 그러니 근로자참여법에 규정된 노사협의회는 당장 폐지해도 노동자의 손실도 아니다.

5. 노사협의회를 폐지하고 노동자평의회를 설치하도록 한다면, 걱정할 지점이 있다. 노동조합이다. 우리의 경우 노동조합은 기업, 즉 사업장에서 노동조직으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의 노동조합은 사업장 밖에서 조직돼서 사업장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켜 활동하는 노동조직이 아닌 것이다. 산별노조라고 해 봐야 기업노조들이 본부·지부·지회로 조직형태를 변경해서 전환한 것이거나 지부·지회·분회 등 기업별조직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그런데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자대표기구인 노동자평의회가 설치된다면,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의 존재이유를 두고서 논란이 벌어질 수가 있고, 이는 노동조합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과거 독일에서 노동자평의회를 두고서 벌어졌던 논의를 살펴보면 이러한 우려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지만 사업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심지어 노조와 교섭해야 할 임금 등 근로조건을 노동자평의회와 협상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노조와의 교섭사항에 관해서는 노동자평의회 사항이 아니라는 법을 통해서 이를 규제할 것인지 등 노사협의회를 폐지하고 노동자평의회 도입을 추진하게 된다면 그 입법 논의사항으로 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파업 등 쟁의권 행사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노동자평의회가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한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파업 등 쟁의권 행사도 당연히 보장해야 한다. 노동자평의회는 현재 근로자참여법상 노사협의회처럼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에서는 그 설치가 강제돼야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아니라 사업장의 운영 등에서 노동자의 참여를 위한 기구이므로 기업변동·기업구조조정 등 주요 경영권 사항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입법해야 하고, 이 점이 노동자평의회의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름만 바꾼 노사협의회로 전락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위에서 본 근로기준법이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 내지 협의사항들을 노동자평의회 사항으로 하자는 논의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만이라면 바람직하지 않다.

6. 노조 조직률이 낮은 우리의 경우 그냥 노동자평의회법을 통해 노조가 할 사항까지도 노동자평의회에서 할 수 있게 입법한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일 없겠지만 말이다. 독일 등에서 노동자평의회는 거세된 노동자대표기구라고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파업 등 쟁의권은 보장되지 않고, 사업장에서 사용자와의 합의사항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저 노동운동의 고양기, 혁명의 시대에 공장평의회·노동자평의회와는 거리가 있다. 독일의 경우 그 거세를 통해서 사용자 자본이 주도적으로 도입했다. 하지만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대표하는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경우 이런 노동자평의회라도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노동자조직으로서 분명한 존재이유가 있다. 그걸 어떻게 활용할지는 노동조합이 할 일이고, 사업장에서 노조 역할을 우려해 도입 논의에 소극적일 필요도 없다. 노동자가 사용자가 정하는 대로 받는 노예가 아니라면, 사업장에서 노동자대표기구를 통한 관여를 보장해야 한다. 노사협의회는 아니고, 노동조합이 없어도 노동자의 대표기구는 설치돼야 한다. 노동자평의회 도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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