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기승전 최저임금' 프레임이 재가동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과 "최저임금 때문에 가게 문을 닫는다"는 중소상공인·자영업자 간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기사가 쏟아진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해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킨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최저임금 동결 주장이 나온다.

중소상인·자영업자들은 "재벌대기업과 불공정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시장환경을 그대로 둔 채 최저임금 탓을 해 봐야 소용없다"고 입을 모았다.

최저임금 인상 탓? "재벌대기업 독과점 경제구조가 문제"

양대 노총이 참여하고 있는 최저임금연대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 주최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노동자·중소상인 역지사지' 간담회에서 방기홍 한상총련 상임회장은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에 처한 건 사실이지만 최저임금은 열 가지 원인 중 하나일 뿐"이라며 "최저임금을 인상하면서 카드수수료·가맹점 수수료 문제, 임대료 인상 문제가 함께 해결됐다면 최저임금 인상분을 감당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방 회장은 "재벌대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하는 경제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한 번의 최저임금 인상은 엄청난 고통이 될 것"이라며 "소상공인들의 매출과 수익이 늘어나려면 시장을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총련에 따르면 전쟁터와 다름없는 유통시장에서 중소상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재벌유통업체들의 무한출점을 규제해야 한다. 2017년 9월 중소기업연구원 조사를 보면 대형 복합쇼핑몰이 들어설 경우 반경 10킬로미터 원거리 상권에서 매출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복합쇼핑몰 입점으로 소비자들의 발길이 원거리 상권에서 쇼핑몰 주변 상권으로 이동했다. 복합쇼핑몰 주변 근거리 상권(3~5킬로미터)에서는 프랜차이즈형 또는 고급화 점포들이 생기면서 기존 소상공인들이 내쫓기는 '둥지내몰림' 현상이 나타났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내세워 골목상권을 휩쓸고 있는 이마트 '노브랜드'는 동네슈퍼 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2016년 7개 직영점으로 출발한 노브랜드는 현재 200여개가 출점한 상태다. 직영점이 확대되면서 지역상인들과 분쟁이 이어지자 이마트는 직영점이 아닌 가맹점 출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마트에서 개점비용의 51% 이하를 부담하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상 사업조정 대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노브랜드 가맹점 출점 이후 갈등과 분쟁에서 이마트는 빠져 버리고 가맹점주와 골목상인 간 '을과 을'의 싸움만 남았다. 이동주 한상총련 사무총장은 "이마트 노브랜드 같은 변종 SSM(대기업 슈퍼)의 편법출점을 규제하려면 사업조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총련은 노동자들에게 신용카드 대신 제로페이 사용을 활성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 결제수수료 부담을 줄여 주는 모바일 간편결제 시스템이다. 이동주 사무총장에 따르면 연매출 8억원 이하 편의점에서 제로페이 사용률이 25%가 되면 월 8만2천500원, 연간 99만원의 수수료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는 "월 13만~15만원의 일자리안정자금을 지원받는다면 최저임금 인상분 보전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방기홍 회장은 "지금의 수익구조로 최저임금 1만원은 불가능하지만, 99%의 노동자·소상공인들이 연대해 (대기업 독과점) 구조개선에 한목소리를 낸다면 최저임금 1만원이 아니라 1만5천원을 달성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배혜정 기자

"최저임금 인상과 중소상인·자영업자 보호 같이 가야"

양대 노총은 최저임금을 둘러싼 을과 을의 제로섬 대결 대신 불공정 경제구조·재벌체제 개혁을 위해 손을 맞잡겠다고 약속했다. 이성경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대기업 불공정거래를 해소하지 않는 한 답이 없다"며 "소상공인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백석근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회의는 단순히 인상률을 가지고 싸우는 자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최저임금을 둘러싼 모순과 갈등을 해소하고 한국 사회가 갈 길이 어디인지 논의하는 자리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 참석자들은 경제민주화 선언문을 통해 "재벌 대기업과 불공정한 경쟁을 하는 중소상인과 자영업자의 시장환경을 그대로 두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최저임금만 탓하는 보수언론과 정치권을 엄중히 규탄한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공정한 경쟁, 경제민주화를 위한 중소상인·자영업자 보호조치는 함께 가야 하고, 그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들은 "경제민주화와 노동존중 사회, 중소상인·자영업자 보호를 위해 을들의 연대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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