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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이 자유라면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오늘은 자유를 생각해 보자. 이 세상은 자본의 세상, 자유의 주인은 자본이고, 그 노예는 노동이라고 일찌감치 노동운동은 선언했다. 그러니 노동자는 자유보단 평등을 뜨겁게 외쳤던 것이고 자유는 왠지 노동자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 세상은 노동자도 행사한다는 계약의 자유로 서 있다. 근대 이후 세상은 누가 뭐래도 자유를 생존 원리로 한다는 자본의 세상이다. 헌법이 선언한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권은 이 계약의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 만약 계약의 자유가 이 세상에서 인간의 자유로 보장돼 있지 않다면? 이 세상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란 인민 항쟁으로 벌써 저세상이 됐을지 모른다. 소유의 사회화와 관리의 계획화가 세상의 원리여야 한다고 여긴다면 이런 말이 낯설 것이다. 자유를 위해 인민이 항쟁하다니, 근대 시민혁명이 언제 적인데 그러냐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본래 의미의 자유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기본권으로 보장받는 것이다. 권력이 법으로 보장해 줘야 국민 기본권이 되고 사장이 취업규칙으로 보장해 줘야 노동자 권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는 본래부터 국민의 것이고 노동자의 것이었다. 이렇게 자유는 노동자에게 낯설 수도, 흘러간 노래일 수도 없다. 단지 의도적으로 감춰지고 의식적으로 외면했을 뿐이다. 자유는 노동자의 존재 자체라서 감추고 외면한다고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자유인 사람을 사업장에서 자유 없는 노동자로 추락시키는 계약이 바로 근로계약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정의했고 이를 구체적인 사건에서 대법원은 사용종속관계, 즉 사용자에 복종해서 그가 시키는 대로 일하는 자가 ‘근로자’라고 판결해서, 근로계약을 체결해 사용자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사업장에서 자유가 박탈된 자라는 걸 분명히 했다. 이 자유의 세상에서 자유 없는 인간이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근로계약은 이 세상에서 다른 계약과 마찬가지로 당사자, 즉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자유로운 합의로 체결한다. 근로계약의 내용인 근로조건도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도록 근로기준법은 정하고 있다(4조). 이상과 같이 자유가 없다면 근로계약도, 근로자도 존재할 수가 없다. 계약의 자유가 자유 없는 인간, ‘근로자’를 만든 것이다. 인간의 자유가 자유의 인간을 죽이도록 이 세상은 자유인 것이다.

2. 근로자는 사용자에 복종해서 일해야 하는 자로 사업장에서는 자유 없는 자다. 계약에서 정한 대로 하지 않으면 계약을 위반한 것이니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된다. 이 세상의 기본질서를 법전에 새겨 넣던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서 파업 등 단체행동을 하는 것은 불법, 범죄로 규정했다. 이른바 단결금지 법제였다. 프랑스의 르 샤플리에법, 영국의 단결금지법 등 나라마다 이름은 달랐지만, 근로계약에 따라 자유가 박탈된 노동자들이 행사하는 자유는 계약위반을 넘어 국가가 법으로 범죄로 다스렸다. 그 뒤 시민과 노동자의 사회운동을 거치면서 1870년대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독일에서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 교섭하고 쟁의하는 것은 더는 국가가 범죄로 처벌하지 않게 됐다.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 활동할 것이 자유로 보장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후 손해배상·징계 등 민사책임을 면책하는 데로 그 자유가 확장됐다. 오늘 이 나라에서 문제 되는 결사의 자유 등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은 바로 이러한 노동자의 자유를 위한 것이다.

3. 이렇게 끄적거리고 보니, 노동자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외치는 것은, 스스로 근로계약 체결로 자유를 버린 노동자가 자유를 달라고 말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1944년 5월10일 ILO 총회에서 채택한 필라델피아 선언에서 첫 번째로 선언한 기본원칙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노동을 상품으로 거래하고서 (확대) 재생산해 왔던 것이니, 이는 이 세상을 무덤에 묻고야 실현할 수 있는 저주의 주문이거나 그저 노동의 꿈일 뿐인 빌어먹을 원칙의 선언이겠다. 파시즘에 대한 승리를 앞두고서 그만 흥분해서 선언했던 것이라고 변명해도 뭐라 비난하고 싶지 않다. 꿈이라도, 흥분해서 한 것이라도 이 세상에서 자본의 확대재생산에서 생산수단에 결합할 상품으로 거래되는 노동자들이 자신은 상품이 아니라는 선언 앞에서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근로계약으로 자유 없이 사용자에 복종해서 살아가는 노동자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는 말은, 노동자는 태어난 대로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필라델피아 선언자들이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지속적인 진보에 필수”라고 두 번째의 기본원칙으로 선언한 것은 당연했다. 자유를 위한 수단으로써 자유를 선언한 것이었지만, 나는 이 자유의 선언이야말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는 선언만큼 목적의 선언이 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흔히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가 계약의 자유에 의해서는 대등하게 계약을 체결할 수 없어 열악한 처지에 놓이게 됐고 이로 인해 노동자 보호를 위한 사회법제를 도입하게 됐다고 말해 왔다. 이렇게 가르쳤고 배워 왔다. 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할 자유인 ILO 결사의 자유는 개별 근로자의 자유로 할 수 없는 집단적 자유를 보장한 것이라고 해설해 왔다. 이러한 자유의 이분법에 의하면 노동자는 근대에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자유 등 근로자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았을 뿐이고, 그 뒤 현대에 이르러서야 집단적인 자유를 보장받게 됐노라고 인식하는 것이고, 필라델피아 선언은 이를 천명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분법은 노동자에게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 즉 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할 단결의 자유는 노동자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있던 자유까지는 아니라는 주장을 가능케 한다. 그럼 국가가 법으로 그 자유의 범위를 정해 보장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판결을 가능케 한다. 이 세상에서 보장되는 자유의 목록에는 천부의 것이 있고, 국가가 법률로도 함부로 제한·금지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판결하고 있는데, 노동자에게 보장되는 단결의 자유는 그러한 자유가 아니라고 취급될 수 있는 것이다. 본래의 자유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보장받는 것이지 국가가 법으로 특별히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자유는 그 자신이 생각하고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생각하고 표현하며 행동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서 인간이 쟁취하기 위해 주되게 투쟁해 왔던 것은 후자의 자유였다. 국민 일반에게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도 집단적인 자유로 행사되는 것이고, 이러한 자유와 노동자에게 보장해 줘야 할 자유가 어째서 달라야 한다는 것인가. 계약의 자유가 시장전체주의와 자본의 전제, 자본의 무한착취를 낳았으니, 그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자유를 수정한 것이라고, 그래서 노동자에게 노조할 자유, 즉 ILO 결사의 자유나 대한민국헌법의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것이라는 수많은 해설서와 판결문을 나는 찜찜하게 읽을 수밖에 없다.

4. 추상을 맴돌다 보니 도무지 뭐가 자유라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가 알쏭달쏭한 말만 늘어놓은 위 글이 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근로계약 체결이 자유라면 그 계약위반은 국가가 범죄로 다스릴 것은 아니라는 말이겠다. 파업 등 쟁의행위는 노동자가 근로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 그건 자신의 자유를 계약의 구속에서 벗어나 행사하게 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하지 않는 장. 사람의 자유에 순번을 매긴다면 그 목록 상단에 기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말은 해도, 일하지 않는 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파업은 노동자가 여럿이 일하지 않는 것이고, 처벌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이 나라 노동자들은 이걸 위해 오늘도 ILO 기본협약 비준을 외치고 있다. 단순히 일하지 않는 것인 파업은 일하지 않은 만큼의 임금공제를 제외한 민사책임까지도 지지 않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는 이렇게 보자면, 갈 길이 멀다. 지난한 노동운동을 통한 전투의 전리품으로 알 지경으로 노동자에게 자유는 너무도 낯설다. 일하지 않을 자유, 단결해서 활동할 결사의 자유…. 빼앗긴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 자유를 빼앗은 권력과 자본에 당당히 자유를 말해야 한다. 자유는 노동자의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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