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착하게 살라! 산업재해 사건을 하다 보면 착한 노동자로서의 삶의 태도가 정언명령으로 배경에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든다. 평소 업무는 주변에서 인정할 만큼 성실하게 수행하고 초과근무는 거부하지 않고 수행한 끝에 누적적으로 증가해 있어야 하며, 대인관계도 원만해 누구나 동료 진술서를 써 줄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임지·보직·업무를 맡겨도 6개월 정도면 무난하게 적응해 있어야 한다. 사용자가 주관하는 회식이 끝나면 얌전히 집에 가야지 개별적으로 맥주 한잔 하러 가거나 노래방을 가는 것은 삼가며, 출퇴근길에는 특이한 곳에 들르지 않는 것이 낫다. 평소 술·담배는 안 하고, 원래부터 고혈압도 없을 정도로 운동 등 자기관리도 하고 있으며, 이혼도 안 했어야 하고, 집안에 자살한 사람도 없어야 하고, 사건사고에 휘말리지도 않았어야 하며, 이왕이면 암으로 돌아가신 가족도 없어야 한다.

기록은 또 어떤가. 입증책임 주체로서 ‘적자생존’ 당위가 깔린 것은 아닐까. 몸과 마음이 아프면 평소 병원에 꼬박꼬박 다녔어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으면 일기로 남기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했어야 하며, 출퇴근 기록이 남도록 교통카드나 하이패스를 써야 한다. 자신이 업무적으로 실수하거나 질책받은 일이 있었다면 이 또한 문서로 남겼어야 하고, 만약에 직장내 갈등이나 괴롭힘이 있었다면 아예 크게 싸워서 일을 키우거나 아니라면 녹음을 열심히 해서 기록을 남겼어야 한다.

모 휴대전화 기종은 잠금화면을 풀 수가 없으므로 사용을 삼가고(지난해 잠금 해제의무가 없다는 판례도 나왔다), 남은 업무를 집에 가져가서 할 경우에도 시간기록을 남기거나 이메일을 주고받아야 한다. 업무환경이 이상하다 싶으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도 챙기고, 작업하는 모습의 사진과 동영상도 남겨야 한다.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야 사회보장보험으로서 산업재해가 인정돼야 함에는 이론이 없다. 다만 산재는 완벽하게 과중하게 일만 하다가 아프고 병들고 죽음에 이른 노동자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업무기인성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개인의 기존 질환 등 반증요인이 우선적인 배제요인처럼 조명되고, 기초질환 또는 기존질병의 독립적인 유발 내지 악화요인이 업무기인성을 무력화시키는 요인으로 심사된다. 이러한 해석 상황에서는 노동자 본인의 건강관리 과실이나 업무관리 책임으로 자책하면서 산재신청을 꺼리게 되거나 신청 과정 중에도 자신의 과실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있는 반증요인과의 인과관계 부존재의 입증이 얼마나 어려운가.

착한 사람과 기록을 잘 남긴 사람의 질병만 산재로 인정할 수는 없다. 뇌심혈관계질병 만성과로 인정기준 등 고시상 산재인정기준들이 개선되고 추정의 원칙 적용 강화로 인해 산재 승인율이 다소 높아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반증요인들이 상당인과관계 배제요인으로 작용할 경우 이는 업무상 원인의 공동원인(유발·악화·가속화)으로서의 성격을 인정하는 판례 태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과중한 업무 때문에 생활습관이 불규칙하면 야식도 먹고 살도 찌고 혈압도 오를 것이고,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도 마시고 배우자와 싸우고 사고도 치고 평소 건강관리를 못 할 것인데, 이것이 반증요인으로 나아가 상당인과관계 배제요인으로 우선 작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비록 착하고 성실한 노동자가 아니라도, 개인적 원인이 즐비한 사건이라도 업무관련성을 파고들어 산재로 인정받는 사례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