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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ILO
▲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

목포 ‘손혜원 거리’를 둘러봤다. 일제시대 건물이 많다. 이걸 보존해 도시재생의 기회로 만들려는 손 의원의 지혜가 놀랍다. 낡은 건물을 예쁘게 수리해 가치를 올리는 일은 투기가 아니라 투자라는 말에 공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에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다. 신안군의 섬들을 잇는 연륙교가 하의도에는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1924년 일어난 암태도의 소작쟁의 기념비를 돌아보며 일하는 사람들의 해방 염원을 느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필자의 평가가 후해졌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공부한 덕택이다. 189개 협약 중에서 정부가 비준한 건 29개다. 선원 보호를 위한 해사 협약(MLC 2006년)에 통합된 53호와 73호 협약을 고려하면 사실 27개에 불과하다. 이 중 11개를 김대중 정부가 비준했다.

1991년 12월 한국은 ILO에 가입했다. 노태우 때 3개 협약을 비준한 이후 김영삼 4개, 김대중 11개, 노무현 6개, 이명박 4개, 박근혜 1개를 비준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비준한 협약은 0개다.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 비준도 좋지만 노동자들이 일하는 조건을 개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기술협약(technical conventions)도 중요하다. 필자가 보기에 진짜 ‘핵심’협약은 177개에 달하는 기술협약들이다. 8개 기본협약은 177개 기술협약으로 나아가는 문을 연다는 의미가 있다.

노무현 정부가 비준한 6개 협약 중에서 해사 협약으로 통합된 53호(1936년)와 170호 ‘화학물질 안전’ 협약(1990년)은 김대중 정부가 비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준일이 2003년 4월로 김대중 정부가 준비한 것을 노무현 정부 들어 추인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까지 감안하면 김대중 정부가 비준한 협약은 13개로 늘어난다. 비준한 협약의 절반이 김대중 정부에서 이뤄진 셈이다.

8개 기본협약 중에서 우리나라는 4개를 비준했다. 김영삼 정부 때인 97년 12월 100호 ‘동등 가치 일(work)에 대한 동등 보수’ 협약(1951년), 김대중 정부 때인 98년 12월 111호 ‘고용과 직업의 차별 금지’ 협약(1958년), 99년 1월 138호 ‘최저 연령’ 협약(1973년), 2001년 3월 182호 ‘최악 형태의 아동노동 철폐’ 협약(1999년)을 비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비준한 협약 중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게 하나 있다. 2001년 12월 비준한 135호 ‘노동자대표 보호와 편의제공’ 협약(1971년)이다. 노조전임자 임금은 국가 개입 없이 노사 자율로 결정하라는 취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본협약을 하나도 비준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준비했던 협약 2개를 뺀다면 노무현 정부가 비준한 협약은 4개다. 선원 관련 협약 2개가 합쳐진 해사 협약의 비준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인 2014년 2월 이뤄졌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박근혜 정부는 ILO 협약을 하나도 비준하지 않은 셈이다. 기본협약 비준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177개에 달하는 기술협약을 비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술협약은 일하는 조건과 상태를 개선해 노동을 보호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문재인 정부 3년차다. 개인과 시민사회의 자유 보장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명시한 기본협약 비준에 가려 노동보호를 규정한 기술협약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문재인 정부도 박근혜 정부처럼 비준 협약 0개를 기록하게 된다. 기본협약에서 막히면 기술협약으로 우회로를 뚫기 바란다. 기본협약 비준 문제가 잘 안 되더라도 대통령이 임기 중 제네바에 가시기 바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지만, 반대로 길을 가다 보면 뜻이 생길 수도 있기에.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 (globalindustryconsult@gmail.com)

윤효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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