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선아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대상판결 : 대법원 2019. 4. 23. 선고 2016다277538 판결

1. 사안의 개요

우정사업본부 소속 집배원은 크게 공무원인 집배원과 공무원이 아닌 집배원으로 구분된다. 우정사업본부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집배원을 대규모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시행했다가, 오히려 집배원 일손 부족 문제가 발생하자 국가공무원인 집배원의 일부 업무를 민간에 위탁한다는 명목으로 ‘위탁집배원제도’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집배원을 충원했다. 위탁집배원은 그 근무방식이나 담당 집배구 특성 등에 따라 상시위탁집배원(국가공무원인 집배원과 동일한 방식으로 근무하며, 특수지나 대단위주택단지가 아닌 지역을 주로 담당), 특수지위탁집배원(산간벽지·도서 기타 교통이 불편한 지역 등 담당), 재택위탁집배원(대단위주택단지 등의 한정된 구역을 담당)으로 구분된다.

위와 같이 재택위탁집배원 제도는 현재까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제도다. 그간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상시위탁집배원과 특수지위탁집배원은 근로자로 인정해 왔지만, 재택위탁집배원에 대해서는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근로기준법 등 제반 노동관계법령 적용을 회피했다. 이에 이 사건 원고들은 자신들은 사업자가 아니라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대한민국(우정사업본부)을 상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 달라며 2014년 3월께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1심 판결(서울중앙지법 2016. 2. 18. 선고 2014가합518841 판결)과 2심 판결(서울고등법원 2016. 11. 30. 선고 2016나2016748 판결)은 모두 원고들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했으며, 대법원(대상판결) 역시 원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상고기각 판결을 통해 이를 최종 확인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판단기준에 관한 확립된 법리(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등)를 기초로 원고들의 근로자성을 판단하면서, 원심이 아래와 같은 사정(①~⑨)을 근거로 원고들이 피고 산하 우정사업본부의 지휘·감독 아래 노무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① 피고는 이 사건 위탁계약 등에 따라 재택위탁집배원의 업무내용과 범위, 처리방식, 매일 처리할 우편물의 종류와 양을 정했다. ② 피고는 우편업무편람, 각종 공문,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구체적인 업무처리 방식 등을 지시했는데, 이는 우편배달업무 관련 정보를 알리는 정도를 넘는 것이었다. ③ 피고는 획일적인 업무수행을 위해 재택위탁집배원에게 정해진 복장을 입고, 관련 법령 등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배달하도록 했으며,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교육을 시행했다. ④ 피고는 현지점검 등을 통해 재택위탁집배원의 업무처리 과정이나 결과를 지속적으로 관리·감독했다. ⑤ 피고는 원고들로 하여금 정해진 장소에서 우편배달업무를 처리하도록 했고, 일정 기간 근무상황부·인계인수부 등을 마련해 재택위탁집배원 근태를 관리했으며, PDA에 입력되는 배달 정보를 통해 재택위탁집배원의 업무처리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⑥ 우편물 배달업무의 중요성과 업무수행에 따르는 책임, 피고가 재택위탁집배원들에게 근무복과 용품을 무상 대여한 취지 등을 고려하면, 재택위탁집배원이 제3자로 하여금 배달업무를 대신하게 하거나 다른 일을 겸업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⑦ 이 사건 위탁계약서에는 우편물 배달업무 관련 각종 주의사항과 계약해지 사유 등이 자세하게 기재돼 있다. ⑧ 원고들이 근무시간에 비례해 받은 수수료는 피고를 위해 제공하는 근로의 양과 질에 대한 대가에 해당한다. 원고들이 일정 시점부터 사업소득세를 냈다는 사정만으로 원고들의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 ⑨ 원고들이 수행한 우편배달업무는 피고가 체계적 조직을 갖춰 전 국민에게 제공해 온 본연의 업무로, 관련 법령에서 취급자격과 업무처리 방식, 위반시 민·형사상 제재에 관해 엄격한 규율을 하고 있다. 원고들은 우편배달업무를 수행하는 피고의 다른 근로자인 상시위탁집배원·특수지위탁집배원과 본질적으로 같은 업무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했다.”

3.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지난 20여년간 노동법 사각지대에 방치되며 인간존엄성 보장을 위한 근로조건 최저기준(근로기준법 등)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던 재택위탁집배원들의 근로자성을 명백히 확인함과 동시에 사용자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국가가 나서서 무려 20년간 재택위탁집배원들을 개인사업자로 위장하고, 노동관계법령 적용을 부당하게 잠탈해 오던 것을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판단은 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등을 통해 새롭게 확립된 법리(기존의 대법원 판결보다 완화된 기준을 제시)를 통해 판단해야 함을 간접적이나마 다시금 확인하기도 했다. 오래된 하급심 판결이긴 하나 재택위탁집배원과 관련해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선행판결(수원지법 2002. 11. 13. 선고 2002가합2389 판결)이 있었으나, 위 판결은 대법원 2004다29736 판결에 따른 새로운 법리 확립 이전의 대법원 96누1795 판결 등(‘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는지 여부’ 등의 엄격한 기준 적용)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대법원은 대상판결 선고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대상판결의 의의로 재택위탁집배원 근로자성에 관한 상반된 하급심 판결례들 중 이 사건 원심 판결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밝히며, 이는 대법원 2004다29736 판결의 법리에 따른 것임을 밝혔다.

또한 대상판결은 근로자성 판단법리와 관련해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나, 다음과 같은 부분은 눈여겨볼 만하다.

재택위탁집배원들은 하루 5~7시간을 근무하는 단시간 근무자들이 대부분이며, 주로 자신의 거주지 인근을 담당집배구역으로 지정받고 있고, 다른 집배원을 통해 배달 우편물을 담당 집배구역에서 직접 받아 배달하는 방식으로 근무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우체국으로 직접 출·퇴근하는 부분이 생략돼 있다. 사용자의 지휘·감독은 주로 원격·간접 방식(이를테면 휴대전화·이메일·PDA·문서 전달 등)을 통해 이뤄졌다. 피고가 근로자로 인정하고 있는 상시위탁집배원과 업무방식, 업무범위, 지휘·감독 방식 등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택위탁집배원들의 위와 같은 근무방식은 모두 배달업무 특성과 우체국의 비용절감 차원에서 고안된 방법일 뿐이며, 위와 같은 외형을 취한다고 해서 종속적인 관계에서의 지휘·감독이 쉽게 부정될 수는 없음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 사건 소송 내내 피고측에서는 위와 같은 차이들이 재택위탁집배원이 근로자가 아니라 사업자에 해당하는 주된 근거이며, 대상 근로자들에 대해 근태관리나 지휘·감독을 전혀 하지 않았고, 도급인으로서의 지시를 한 것뿐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본 사건 1심 판결에서는 이러한 피고쪽 주장에 대해 “원고들이 상시위탁집배원보다 업무량이 적고 도보로 이동하며 배달업무 난이도가 낮은 사실, 수집업무나 등기생성업무·마감업무 등을 수행하지 않는 사실, 채용자격을 달리 한 사실은 인정되나 이와 같은 사정은 담당업무 등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는 것으로 특수지위탁집배원의 경우와 같이 임금액에 차이를 둘 사정이 될 수 있을 뿐 원고들의 근로자성까지 부정할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그 주장을 배척했다. 대상판결 역시 원고들의 우편배달업무는 피고의 다른 근로자인 상시위탁집배원·특수지위탁집배원과 본질적으로 같은 업무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한 것임을 인정함은 물론 피고가 우편업무편람, 각종 공문,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구체적인 업무처리 방식 등을 지시했고, 이는 우편배달업무 관련 정보를 알리는 정도를 넘어선 것이었음을 인정하며 위와 같은 점을 주요한 근로자성 판단근거로 삼았다.

그간 일부 판결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함에도 통상의 근무형태를 가진 근로자 집단과 다른 방식으로 근무하는 경우나, 사무실로 출퇴근하지 않고 외근을 주로 하는 근무형태 등에서 근로자성 판단에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이에 공공부문의 민간위탁 과정은 물론 사업 일부의 외주화 과정에서 이 사건 재택위탁집배원들 사례와 같이 근로자들이 수행하던 기존업무를 약간의 근무형태 등만 변경해 넘기면서 도급·위탁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위장도급·위장자영인’을 만들어 내는 사례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위탁·도급의 개인사업자로 위장하기가 수월한 외근형태 근로자의 근무실질에 대해 나름 적극적 판단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부디 대상판결이 외근형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근로자성 판단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보다 진전된 결과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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