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승용 현대사상연구소장·전 대구대 교수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매각에 대한 노동계와 지역사회의 저항이 심상치 않다. 매각이 예정대로 진행되는 한 갈등은 계속될 듯하다. 하지만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세계 조선업계 1위와 2위의 결합을 통한 시너지효과 내지 국가경쟁력 강화를 기대하고 있다. 같은 일을 노동계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기회라고 홍보한다.

노동계가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재벌특혜와 고용불안에 있다. 세금이 10조원 넘게 들어간 공적 기업의 경영권을 사적 이윤추구를 생명으로 삼는 재벌에게 헐값으로 넘긴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무엇보다도 구조조정 가능성 내지 확실성 때문에 노동계 저항은 당연해 보인다. 구조조정 충격파는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과 1천300여개 하청업체들을 덮칠 테고, 그에 따라 지역경제가 심각하게 흔들릴 것이다.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기대하고 내세우는 막연한 긍정적 효과보다는 노동계가 제기하는 절박한 문제가 훨씬 무거워 보인다.

물론 무게를 재는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남는 장사로 보고 추진하는 것은 현대중공업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결정은 정부 경제철학을 떠나 생각할 수 없다. 정부 경제철학은 국민 다수의 요구와 무관할 수 없다. 절대다수의 국민이 국가경쟁력과 경제성장에 절대적 가치를 두는 한, 또 성장 결과가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되고 또 그것이 어떤 희생의 결과인지 묻지 않는 한, 정부는 노동계 반발에 맞서 나름의 대응논리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의 의식과 욕망구조는 그동안 사람보다 성장을 앞세우는 쪽이 아니었던가? 무수한 김용균들의 죽음에 대한 분노보다, 한 해 수천억원에 달하는 이건희 부자의 주식배당금에 대한 부러움이 더 큰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 아니었던가?

그런 만큼 노동계가 풀어야 할 과제는 간단하지 않다. 노동계는 매각 대안으로 영구 공기업화를 선호한다. 문제를 기회로 바꾸는 기적을 위해서는 선결조건을 충족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이나 하청업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개조해야 '공기업 논의는 철밥통을 위한 그들만의 투쟁'이라는 시선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근래 호황과 달리 향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불황에는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공적자금에 대한 부담은 어떻게 해소해 갈 것인가? 그리하여 공기업에 대한 온갖 불신을 불식하고 절대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을 경영철학과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점에서 노동계가 기회로 보고 있는 대안도 풀어 가야 할 난제들의 복합체다.

산업은행이 기회로 여기는 매각은 풀 수 없는 문제들, 즉 재벌특혜·노동자 희생·지역경제 타격 등의 문제를 억누르거나 얼버무리지 않고는 진행되기 어렵다.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관성에 따라 눈앞의 이윤추구 논리에 끌려다니기를 그만두고, 범세계적 자본주의적 성장 위기에 대비하는 장기구상의 일환으로 새로운 공기업 모델, 경영모델 창출 기회를 만들면 왜 안 되겠는가? 그럴 수 있는 절호의 조건이 마련돼 있지 않은가? 노동계와 지역사회의 강력한 에너지, 대우조선해양의 뛰어난 기술력, ‘사람이 먼저’라는 정부 경제철학이 뒷받침하고 있지 않는가? 풀 수 없는 문제들의 수렁에 빠져들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데에는 하나의 선결조건이 있다. 산업은행 스스로 노동계와 지역사회의 대안 생산논의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그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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