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에서 파견·용역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5천명에 육박한다. 환자이송이나 청소·시설관리 같은 업무를 한다. 국립대병원 비정규직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단계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이다. 3단계로 나뉜 정규직 전환 단계 중 가장 먼저 추진한다는 뜻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립대병원을 통틀어 간접고용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곳은 양산부산대병원이 유일하다. 전환된 노동자는 240여명이다. 사실상 전환율 0%라고 지적하는 노동자들 주장에 힘이 실린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들 목소리를 들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

“떼인 돈 받으러 가자!” 요새 근로감독관 조장풍과 그의 제자 천덕구의 활약이 통쾌하다.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이야기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떼먹은 임금을 되찾는 이들의 좌충우돌 활약에 시원하다가도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드라마와 현실의 괴리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임금을 떼이고도 되찾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 지난해 체불임금 규모는 1조6천472억원이다. 임금을 떼이고도 떼인 줄도 모르거나 구조적으로 임금을 떼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그렇다.

하청업체는 원청에 노무공급을 약속하고 대가를 받는다. 하청업체는 노동자를 고용해 원청에 노무를 공급하고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한다. 하청업체가 노동자와 맺은 계약대로 임금을 지급하면 겉보기에는 떼인 돈이 없다. 하지만 파헤쳐 보면 세 종류의 ‘떼인 돈’이 숨겨져 있다.

떼인 돈 1. 노무공급계약의 경우 원청과 하청이 계약을 맺을 때 일반적으로 투입할 인원과 각각의 인건비 단가를 기준으로 대가를 산정한다. 국립대병원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과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 따라 청소·경비 등 단순노무 원가산정시 시중노임단가 이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용역계약 내용은 용역노동자들이 알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업체가 인건비로 책정된 금액을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용역업체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 용역계약서와 임금명세서를 대조해 떼인 돈을 찾는 일부터 하게 된다. 정부는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에서 이를 방지하도록 계약시 예정가격 기준대로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으나, 노조가 없으면 ‘떼인 돈 1’의 문제가 반복해 발생한다.

떼인 돈 2. 원청이 하청에 지급하는 대가 중에는 인건비뿐 아니라 복리후생비·경비·일반관리비·이윤 등 다양한 명목이 포함돼 있다. 용역계약서를 보니 인건비 비중은 서울대병원이 73.7%, 강원대병원이 67.3%에 불과했다. 복리후생비나 경비 중에는 교육훈련비·피복비 등이 포함돼 있으나 그대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반관리비는 업체 이윤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일반관리비와 이윤은 전체 용역비의 3~10%로 다양하다. 여기에 경비 중 실제 지출이 안 되는 부분까지 합치면 이윤은 더욱 늘어난다. 하청업체는 노동자와 계약을 맺고 임금을 지급하는 것 외에 특별한 역할이 없다. 하청노동자 업무가 이뤄지는 데 불필요한 존재다. 따라서 하청업체가 생산에 기여하지도 않으면서 중간에서 가로채는 돈 역시 떼인 돈이다.

떼인 돈 3. 헌법에 의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조건을 단체교섭으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는 단체교섭권을 제약받는다. 아무리 하청업체와 교섭을 해도 하청업체는 원청에서 받은 용역비 이상의 임금인상을 하지 못한다. 이런 교섭을 상대 없이 허공에 대고 연습하는 섀도복싱처럼 ‘섀도 교섭’이라 부르기도 한다.

원청 입장에서는 특정 업무를 하청으로 외주화해 단체교섭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임금을 지급하게 되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고 자기 뜻대로 임금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최저임금 이하로 계약을 체결해도 원청은 처벌받지 않는다. 지난해 서울대병원이 강남센터 미화용역과 관련해 체결한 계약서에는 하청노동자 기본급이 153만1천737원으로 돼 있다. 같은해 최저임금보다 4만2천33원 적다. 이처럼 원청이 간접고용으로 누리는 경제적 이익 역시 넓은 의미에서 노동자가 원청에 떼인 돈이다.

원청과 하청이 하청노동자 돈을 떼먹은 결과 하청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업체가 바뀌어도 그 자리를 지키는 하청노동자는 간접고용 먹이사슬의 밑바닥에서 피해를 당하고 있다.

파견·용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바로 이런 ‘중간착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일부 국립대병원 사용자가 고집하고 있는 자회사 전환은 해답이 될 수 없다. 하청업체가 민간회사가 아니라 원청 자회사로 바뀌면 ‘떼인 돈 1’의 문제는 조금 줄어들지 모른다. 공공기관 자회사가 계약서상 인건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지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은 용역계약의 세부적 내용은 알기가 어렵기 때문에 ‘떼인 돈 1’이 되풀이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더구나 ‘떼인 돈 2’와 ‘떼인 돈 3’의 문제는 하청업체가 민간에서 원청 자회사로 바뀐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자회사 설립·운영 비용, 관리자 인건비 등이 추가로 들고 원청과 하청의 분리로 인해 경비 절감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떼인 돈 3’의 문제는 전혀 해결할 수 없다.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지배하는 원청이 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해 사용자 책임을 온전하게 지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떼인 돈, 어떻게 찾아야 하나. 조장풍은 현실에 없을뿐더러 설령 조장풍이 온다 하더라도 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지만 간단하고 쉬운 해결책이 있다. 공공부문의 파견·용역 노동자 수만 명이 이미 직접고용됐다. 국립대병원 경영진이 직접고용 결단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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