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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빛 본 보건의료인력지원법, 만성 인력부족 병원 바꿀 수 있을까보건의료노조 “직종별 필요인력 명시한 보건의료인력기준법 제정으로 이어져야”

지난해 초 간호업계 ‘태움 문화’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신규간호사가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나면서다. 선배 간호사가 신규간호사를 가르칠 때 까맣게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 해서 '태움'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말은 병원에서 일하는 이들의 노동실태를 압축적으로 드러냈다. 노동계는 태움 문화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병원 문화 속에서 인력마저 부족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약자에게 감정을 배출하는 갑질 문화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병원 인력부족 문제 노동자도 환자도 불행

태움 문화만이 아니다.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집단 사망사고와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망사고 등 최근 몇 년 사이 보건의료계에서는 안타까운 사건·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는데, 인력부족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간호 인력을 중심으로 한 병원의 인력부족 현상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병원간호사회가 지난해 발표한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1년 미만 근무한 간호사 이직률이 42.7%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간호사가 되기 위해 몇 년간 공부해서 자격증을 딴 뒤 입사했음에도 신입 간호사 10명 중 4명 이상이 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증거”라며 “열악한 노동환경의 중심에는 인력부족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가 지난해 3월부터 2개월간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1.8%가 부서 내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자연스럽게 보건의료업계 노동운동의 핵심 의제는 ‘인력난 해소’로 모였다. 하지만 인력은 곧 비용 문제다. 노사교섭으로 인력문제를 풀기는 쉽지 않았다. 인력 수급 문제를 풀 법안도 없었다. 나영명 노조 기획실장은 “간호등급제와 같이 보건의료인력 문제와 관련한 내용이 의료법이나 보건의료기본법 등에 분산돼 있긴 했지만, 보건의료인력 문제에 대한 전면적 검토나 계획을 수립하도록 종합적으로 만든 법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노동계가 그간 정부의 보건의료인력 수급과 유지·관리 의무를 명시한 법안을 제정하라고 요구한 까닭이다.

2012년 6월 당시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정안을 발의한 뒤 관련 법안이 나왔지만 논의는 더뎠다.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정부·보건의료노조·대한간호협회가 협의를 거쳐 그해 하반기 합의된 조문안을 마련했다. 올해 1월엔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도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발의했다. 지난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윤소하·정춘숙·윤종필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을 병합해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대안으로 제출된 제정안이다. 제정안은 6개월 뒤인 올해 10월6일 시행된다.

"장시간 노동·노동조건 개선 토대 되길"

노동계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병원업계 인력부족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장시간 노동·열악한 근무조건 개선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제정안에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를 두고, 실태조사를 통해 보건의료인력종합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건의료기관이 원활한 인력 확보와 근무환경 개선을 할 수 있게 5년마다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3년마다 실태조사도 실시해야 한다. 종합계획에는 보건의료인력에 관한 정책목표와 방향에 관한 사항이 담긴다. 종합계획에 따라 복지부 장관과 관계부처 장관, 시·도지사가 매년 보건의료인력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한다. 복지부 장관이 보건의료인력 지원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관계 전문기관 또는 단체를 보건의료인력지원전문기관으로 지정·운영할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나순자 위원장은 “보건의료인력 부족은 심각한 문제임에도 그동안 정부는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실태조사와 정확한 종합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며 “정부 책임을 전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이런 문제들을 정부가 해결해야 하는 법적 근거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나영명 실장은 “노조는 직종별 필요인력 기준을 명시한 보건의료인력기준법을 마련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이번 제정안이 기준법을 마련하는 중요한 지렛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현장을 어떻게 바꿀지는 시행령에 달려 있다. 노조는 시행령에 구체적이고 정부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 실장은 “시행령에는 법에 명시된 조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처벌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나영  joi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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