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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권리를 박탈하는 ‘탄력근로시간제’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03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비정규 노동자가 월차를 쓰겠다고 하니 관리자가 그를 밀쳐 넘어뜨리고 그 노동자가 입원한 병원까지 찾아가 칼로 아킬레스건을 그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분노해 이틀간 라인을 멈췄고, 그 일을 계기로 현대차에 비정규직노조가 만들어졌다. 그 관리자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노동자들에게 휴일에 대한 선택권을 주지 않겠다는 강력한 입장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없다면, 노동자들에게 힘이 없다면, 법에 보장된 휴일이라 하더라도 그 휴일의 사용 권한이 기업에게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2월19일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노사정 합의문’ 형식으로 발표됐다. 법에 보장된 주 40시간 일할 권리,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넘지 않게 일할 권리를 노동자들에게 온전히 보장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노동자들에게 힘이 없고,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 기업들이 자유롭게 노동시간을 변경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으로써, 16년 전에는 관리자가 노동자를 칼로 위협했지만, 지금은 법으로 노동자를 위협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경사노위 본위원회를 거쳐야 하고 국회 입법 과정도 남아 있지만 그 파괴력은 매우 크다.

이 합의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했다. 6개월 기간 안에 자유롭게 노동시간을 조정할 권리를 기업이 갖게 된다. 노동시간을 고정하는 것은 노동자가 삶을 계획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충분한 쉬어야 하며, 일과 후에 친한 이들과 만나고 취미활동을 하는 등 사회적 존재로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시간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이 노동시간을 임의로 조정하게 되면 노동자들은 기업이 원할 때 일하기 위해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한다. 탄력근로시간제의 가장 큰 폐해는 노동자들에게서 시간 권리를 빼앗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부와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의 폐해로 ‘임금 손실’만을 이야기하고, 폐해를 막을 방법을 마련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시간 권리를 빼앗아 놓고 임금을 보전한다고 해서 폐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임금손실 방지책은 실효성도 없다. “사용자는 임금저하 방지를 위한 보전수당, 할증 등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해 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사용자가 알아서 방안을 마련하고, 노동부는 신고 여부만 살피겠다는 것이니 실효가 있을 수 있겠는가.

탄력근로시간제 도입은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하게 돼 있다. 놀라운 것은, 소위 보완책이라고 만들어 놓은 11시간 연속휴식 보장, 2주 전 노동일별 노동시간 통보, 노동부에 신고하도록 한 임금저하 방지책 모두 ‘근로자대표’와 합의만 하면 안 지켜도 된다고 명시한 점이다. 심지어 천재지변이나 기계고장, 업무량 급등 등의 경우는 ‘근로자대표’와 ‘협의’만 하면 노동시간 변경이 가능하다. 최소한의 통제장치조차 ‘근로자대표와의 합의’라는 형식만 있으면 다 빠져나가도록 해 놓은 것이다. 노조가 없는 90%의 노동자들에게 ‘근로자대표와의 합의’는 ‘사장 맘대로’와 동의어다.

이번 탄력적 근로시간제 합의문은 경사노위가 기업 이익을 위해 노조 없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되, 명분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런데 이제는 노조 있는 노동자들도 위협한다.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는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권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한다면서 비정규직의 노조할 권리는 누락시키고 대체근로 허용이나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삭제,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쟁의행위 찬반투표 효력 제한 등 노조 권한을 빼앗는 내용들이 제출됐다. 노조를 통해 권리를 지키는 것조차 가로막겠다는 셈이다.

탄력근로시간제는 정상적 논의를 거치지 않고 합의가 이뤄졌다. 노동시간제도개선위는 19일 새벽 회의가 종료됐으나, 불과 몇 시간 만에, 이견을 제출한 위원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합의를 했다.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 회의는 22일 종료됐는데, 또다시 한국노총과 경총·정부 간 합의가 시도되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법률가들이 경사노위 앞에서 3월7일 경사노위 본위원회까지 단식농성을 하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다. 노동자들에게서 노동시간 권리와 노조할 권리를 빼앗고, 거기에 ‘노사정 합의’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부여하는 쇼를 계속 지켜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김혜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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