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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펫 뒤에 놓인 노동
▲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41만9천156명. 2017년 국내 6대 국제영화제를 찾은 관객수다.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 같은 이름난 영화제는 이미 그 도시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에 맞춰 도시를 방문하고,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가 상영되는지 화제가 되고, 영화제에 참석하는 배우들 모습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이 눈에 띌수록 그 뒤에 있는 노동은 쉽게 잊힌다. 국제영화제 같은 거대한 행사가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은 레드카펫 뒤에서 일하는 스태프의 노동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청년유니온이 영화제 노동실태를 들여다보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나는 그만두지만 앞으로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청년유니온을 찾아온 한 당사자 덕분이었다. 미처 생각지 못한 현장이었고, 언론에서도 2013년 즈음에 한두 차례 기사화된 것이 고작이었다.

지난해 9월1일부터 노동실태 제보센터를 운영했고 영화제 현장에서 일한 이들의 제보 34개를 받았다. 스태프들은 평균적으로 2년 동안 4개월씩 3개의 영화제를 옮겨 다니면서 일했고, 영화제 개최 직전 한 달 동안 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13.5시간에 이르렀다. 시간외수당을 일부만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한 경우도 30건이 확인됐다.

계약기간이 짧다 보니 근로일수를 180일 이상 채워야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를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영화제 스태프의 근로조건이 담긴 계약서 292개를 입수해 전수분석했다. 스태프 대다수는 평균 연령 28세의 청년들이었고, 평균 근로계약기간은 4개월에 불과했다. 절반가량은 주 40시간 근무를 가정해도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미달했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상적인 고용불안과 경력공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버티다가 결국 떠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가장 규모가 큰 영화제에 해당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제보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 영화제 개최 직전 열흘 동안의 체불임금이 1억2천여만원이나 됐다. 스태프 1인당 80만원꼴이다. 규모가 작은 영세한 영화제에서는 계약서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버젓이 근로계약서라는 제목을 단 문서임에도 근로소득세가 아니라 6.6%의 기타소득세를 납부한다고 돼 있거나, 임금에 퇴직금이 포함된다거나, 연장근로수당이 없고 4대 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내용 등에 이르기까지 근로기준법을 명시적으로 위반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동법에 대한 평균 이하 인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많은 영화제들이 지방자치단체 예산지원 속에 진행되고 조직위원장을 지방자치단체장이 맡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 책임도 있는 것이다. 대형 영화제의 성과는 지자체가 함께 누리지만, 예산편성 과정에서 인건비 고려가 비현실적이어서 충분한 노동권을 보장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인 단순노무는 자원봉사자로 충당하는 경우도 많고, 영화제 개최 직전에 쏟아지는 업무에 스태프들은 공짜 야근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당 25편에서 30편의 영화를 담당하게 되는데 약 10일 동안 모든 영화를 다 검수하려면 야근은 불가피합니다. 정시퇴근시간 이후에 일정이 제멋대로 잡히는 날도 많고, 극장 교육은 멀티플렉스 영화관 상영이 끝난 뒤에 할 수 있기 때문에 새벽 3~5시에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야근을 하지 않을 선택권은 없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했던 스태프 이야기다. 이의제기를 하자 서명하지 않았냐, 여기서 일을 많이 배우지 않느냐, 하는 매우 익숙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놀라운 것은 이걸 문제 삼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는 말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우리 일상에 잊힌 노동이 많은지 생각하게 한다.

청년유니온과 이용득 의원실이 요구한 특별근로감독에 의해 6개 국제영화제에서 일한 스태프 541명에게 5억9천여만원의 체불임금이 지급되게 됐다. 청년유니온은 6개 지방자치단체와 영화진흥위원회에 공개질의를 해 노동법 위반에 대한 재발방지와 스태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을 약속받았다. 물론 영화제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 자체가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겪어 온 거대한 변화 속에서 이렇게 잊힌 일터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제 현장에서 만든 작은 변화는 결국 당사자의 목소리에서 시작됐다. 다른 수많은 작은 일터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이러한 변화를 위해 작은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작지만 거대한 변화를 청년유니온이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youngmin@youthunion.kr)

김영민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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