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새해에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수 있을까.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하청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2일 <매일노동뉴스>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을 짚어 봤다.

근로자→일하는 사람→노무를 제공하는 자
보호대상 여전히 '일부 직종'으로 제한


개정법 1조(목적)에는 현행법에 없는 대목이 등장한다. "노무를 제공하는 자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원안에는 보호대상이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정의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변경됐다. 그런데 조문 어디에도 '노무를 제공하는 자'에 대한 정의가 없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정의 규정을 두는 것보다 두지 않는 것이 보호대상을 폭넓게 할 수 있다"며 "새로운 유형의 노무제공 관계까지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이완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법 체계의 명확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야가 합의했다는 소식에 고 김용균씨 모친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며 법안 통과를 촉구하자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은 "여기는 감성팔이 하는 데가 아니다"고 말해 회의장 분위기가 얼어붙기도 했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이 "사업주한테 의무가 가는 부분은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한정된다"고 몇 차례 확언한 뒤에야 개정법은 법사위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법의 보호대상을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장했지만 실제로는 법 적용대상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을 받는 일부 특수고용 노동자와 배달 노동자로 한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협소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법 적용대상이 협소하고 사용자 조치 범위도 제한적인 것은 맞지만 새로운 고용구조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노동관계법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원청 안전보건 책임범위 둘러싼 다툼 불가피

개정법에 따르면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이 대폭 강화된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도급을 원천 금지하는 조항이 마련됐다. 하지만 도급금지 대상은 도금작업과 수은·납·카드뮴 등 12개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에 국한된다. 고 김용균씨의 죽음을 초래한 태안 화력발전소는 위험작업을 하청에 계속 떠넘길 수 있다는 얘기다.

대신 원청 사용자의 안전보건 책임이 무거워진 만큼 하청노동자가 지금보다는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사내하도급을 포함한 원청 사업장의 안전보건 책임은 전적으로 원청이 져야 한다.

개정법에는 관계수급인 개념이 도입됐다. 예컨대 다단계 하청도 원청 책임범위에 포함된다. 문제는 원청 사업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위험의 외주화다. 환노위에서 막판까지 쟁점이 되면서 정부 원안보다 후퇴했다. "도급인(원청)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장소"에 더해 "지배·관리 가능한 장소"라는 문구가 추가된 것이다. 원청의 구체적인 안전보건 책임범위는 하위법령에 위임됐다. 노사 간 치열한 다툼이 불가피해 보인다.

사각지대였던 서비스업에서 원청 책임이 커지고, 건설업이 별도 특례로 신설돼 건설공사 발주자에게 책임을 묻게 된 점은 의미가 있다. 산재사망시 가중처벌 조항이 신설되는 등 기업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점도 주목된다.

반면 개정법이 시행되면 노동부 장관 작업중지명령은 지금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법에는 장관의 작업중지명령에 대한 근거가 없다. 산업안전보건업무담당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따라 행정조치로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전면 작업중지명령을 했다.

환노위는 개정법 논의 과정에서 재계 반발을 고려해 장관의 작업중지명령 요건을 "산업재해가 다시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한정했다. 지금은 컨베이어벨트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장에 전면 작업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 개정법이 시행되면 해당 작업과 동일한 작업에 재해가 다시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로 제한된다. 사업장 전면 작업중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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