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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으로 가자
▲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운동에 전망이 없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노동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장년이든 청년이든 운동의 부문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그렇게 진단하는 활동가들이 많다. 그것은 실제의 현실이다.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활동가 기근 현상이다. 이전에는 왕성한 활동가가 넘쳤는데, 점점 가물에 콩 나듯 마르고 비틀려 간다. 증거는 더 있다. 나이 든 활동가의 다수는 남은 제 삶의 전망을 운동 속에서 찾지 못한다. 나이 먹어 갈수록 앞날을 불안해하며 당장의 자리에 집착한다.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운동 혁신을 향한 실험과 전진을 향한 도전에 잘 나서려 하지 않는다. 다수의 젊은 운동가도 제 삶의 미래 전망을 운동에서 오롯이 설계하지 못한다.

운동에 전망이 없다는 진단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진단이 있었고, 나름대로의 다양한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토론회도 열어 보고, 집회와 교육 형식을 바꿔 보고, 부문과 세대를 넘어 워크숍도 함께해 봤다. 그런데도 운동에 전망이 없다는 얘기는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졌다. 그러다 이제는 운동에 전망이 없다는 진단 자체가 관성이 돼 별로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운동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

근본 질문을 던져 본다. 왜 운동을 하는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제 나라 국민을 무참하게 학살한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체제전복을 꿈꾸며 시도했던 지난 시대의 운동은 사랑도 명예도 일상도 가족도 남김 없는 운동이어야 했다. 감옥도 해고도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 대통령을 벌써 7번이나 국민이 직접 뽑았다. 노동운동 주력은 상위 10% 안에 들었다. 체제전복혁명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주장이다. 새롭게 성장하는 비정규직 노조가 체제전복운동으로 나설 것 같지도 않다. 운동을 길게 모색해야 하고 활동가도 길게 운동해야 하는, 긴 일상의 시대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운동에 몸담은 모두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길 수 있도록 서로 북돋고 생계도 챙겨야 한다. 그래야만 운동 공동체가 길고 풍부하게 유지될 수 있다.

다시 근본 질문이다. 왜 운동하는가. 운동의 본성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운동의 본성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다. 운동하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다. 여기서 질문을 한 발 더 나가 본다. 운동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가.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운동 저 운동 다양한 활동가와 얘기를 나눠 봤다. 누구도 속 시원히 얘기하지 못했다. 결론은 늘 싱거웠다. 각자의 운동 부문에서 그냥 열심히 하면 되지, 라는 것이었다. 실제 한국의 운동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그냥 각자 열심히 한다. 그러는 사이에 세상은 더 불평등해지고 차별과 혐오가 더 만연해지고 있다.

운동 전망의 핵심은 운동이 구상하는 한국 사회 청사진이다. 그런데 지금의 운동에는 청사진이 없다. 대중이 함께 판단하고 동의하며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청사진 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운동은 그냥 각자 열심히 하면서 자꾸만 뒤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다. 북유럽을 제안한다. 현 단계의 지금 여기에서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로 북유럽 청사진을 운동의 최소 공통분모로 만들고 대중에게 제시하자.

이 제안에 대한 비판이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해야지 무슨 개량주의 주장이냐는 비판이다. 한때의 나 또한 격하게 동조했던 오래된 비판이다. 그 비판이 비판에만 머물지 않게 하려고 비록 화염병과 쇠파이프에 불과했지만 나름 노력했다. 아무튼 그 비판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이렇게 제안하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일단, 그렇다, 일단이다. 일단, 북유럽으로 가자. 운동은 종교가 아니다. 운동은 지금 여기에서 노동자·민중이 좀 더 낫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모색하고 도모하는 것이다.

또 다른 비판이 있을 것이다. 북유럽에도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다. 무엇인가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보다는 무언가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 운동의 특성상 그런 비판이 뒤따를 것이다. 나도 안다. 북유럽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많다. 이 또한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다. 다만 역으로 제안하려 한다. 북유럽을 대신하는 운동의 한국 사회 청사진을 제발 그려 달라. 그러면 이 주장을 철회하고 따르겠다. 운동은 평론이 아니다. 운동은 지금 여기에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북유럽은 최소한 김용균 같은 죽음은 없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지도 않는다. 아니, 동일노동에서는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이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보다 많다. 상·하위 노동자의 임금격차도 2배 수준에 불과하다. 장애인과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다른 나라보다 약하다. 환경에 대한 인식도 훌륭하다. 벌금도 부자가 더 많이 낸다. 열거할 사례는 숱하게 많다.

노동자·민중이 동의하고 움직일 수 있어야 세상이 바뀐다.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청사진으로 일단 북유럽을 제시해 보자. 운동 내부부터 고민하고 학습해 보자.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한석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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