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9.17 화 08:00
상단여백
HOME 피플ㆍ라이프 생활문화
[2018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②] 새해에는 뭐하시나요?최영열 LG유플러스 설치·수리기사

눈을 감는다고 현실의 어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외면한 결과는 또 다른 불편함이다. 어떨 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누군가 표현처럼 노동자 마디 굵은 손가락을 만져 보자. 노동현장의 차별과 고통을 직시하자.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8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을 보내왔다. 대상 1편과 우수상 4편을 소개한다.<편집자>

저는 LG유플러스 홈서비스센터에서 설치 일을 하는 노동자입니다. LG유플러스 지역 홈서비스센터에는 설치기사·AS기사, 고객과 일정을 잡는 스케줄러, 장비를 관리하는 장비관리자들이 모여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관리자와 하청업체 사장도 있지요. 매일 LG유플러스 고객을 만나고 LG유플러스 상품을 설치하고 AS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지만 LG유플러스 직원이 아닌 하청업체 노동자입니다.

날마다 LG유플러스 일을 하면서 생긴 버릇이 있습니다. 일과 중에는 흡연을 하지 않고 마지막 고객 집에서 나오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입니다. 깊게 들이마신 담배연기 한 모금을 차창 밖으로 흘려보냅니다. 이 한 모금은 하루의 고단함을 잊으려고 하는 작은 몸부림이지만, 오늘 하루 일과는 깜깜한 밤처럼 어둡기만 했으며 운도 나빴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관리자에게 영업을 더 하라는 질책을 받고 간혹 갑질하는 고객을 만나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이런 날이 지나고 내일은 오늘보다 훨씬 좋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살지만 희망이라는 단어는 나와 상관없이 내일도 오늘같이 참혹하고 냉혹할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을까? 나의 내일은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무의미하고 슬프지만 이런 질문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으니까요.

10년을 LG유플러스에서 일했지만 단 한 번도 LG유플러스 직원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1년에 한 번씩, 때로는 두 번씩 업체가 바뀌고 새로운 사장을 포함한 관리자와 똥개마냥 서로의 영역을 확인하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전 업체와는 미정산 임금과 퇴직금을 떼이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그럴 때를 대비해서 지역 공인노무사에게 자문을 받고 착수금을 준비하는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이렇게 10년을 살아왔습니다. 연말이 되면 올해 수고한 나를 칭찬하고 우리 가족과 즐거운 정담을 나눌 시간을 갖는 게 아니며, 새해가 되면 1년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내 몸 세포의 날을 세우고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10월 중간이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이 시끄럽습니다. 동료들 사이에 “업체가 교체된다” “누구는 새로운 업체가 받아 준다” “누구는 받아 주지 않을 것이다” 하는 말들이 넘쳐나 업무에 집중도 안 됩니다. 벌써부터 숨이 조여 오며 ‘나는 무사하겠지? 이전에도 무사했으니 앞으로도 무사하겠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여야 합니다.

불안하고 짜증나는 마음으로 현장으로 가 보지만 만나는 고객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솔직히 고객 집에 방문하는 것이 이젠 두렵기까지 합니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담배냄새가 안 나게 탈취제도 뿌리고 가글도 하고 고객 집 현관 앞에서 마지막 옷매무세를 점검하고 조심스럽게 노크를 합니다. 그리고 빠르게 고객의 요구를 확인하고 최대한 빠르게 작업하고 나가야 한다는 조바심만 날 뿐입니다. 요즘 고객들, 아니 사람들을 보면 칼날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털끝만큼도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괜한 트집과 무리한 요구도 굴욕적으로 수긍하고 들어줘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 당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요? 저는 인터넷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기사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LG유플러스의 하청노동자입니다. 인터넷을 설치하고 수리하는데 정말 이래? 정말 이런 고객들이 있냐고요? 하하하 네! 있습니다. 올 때 담배와 술을 사오라는 고객들도 있죠! 이분들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라 욕은 못하겠지만 이런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심지어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음 고객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도 그 집에서 나올 때 “어디 가야 하니 데려다 달라”는 분도 있습니다. ‘고객은 왕’이라는 기업 상술에 세뇌당해 이렇게 해야만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아요. 거부하면 민원을 제기하는 일이 다반사죠. 이렇게 우리는 고객의 터무니없는 요구와 갑질을 버텨야 합니다. 대부분 고객들은 상식적이며 매우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이런 어마무시한 고객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오늘은 운이 좋았습니다. 비상식적인 고객을 만나지도 않았으며 영업도 한 건 했습니다. 회사 관리자가 칭찬까지 하니 기분이 더 좋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는 고객에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영업을 하면서도 “이 상품이 이 고객에게 진짜 필요한 상품일까?” 하는 반문을 수없이 하면서도 원청인 LG유플러스에서 알려 준 말과 행동으로 추가 상품 가입·유치에 성공했습니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상품으로 만든 것이니 분명 좋을 것이라고 위안 삼으며 뒤돌아 설 수밖에 없습니다. 영업을 채우지 않으면 관리자에게 혼나고 월 2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에 점심은 빵으로 때워야 하며 내년에 나는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매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찜찜한 마음은 멀어지는 거리만큼 뒤로하고 아침에 동료들과 했던 말들을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을 해 보지만 쉽지 않네요.

정말 미치도록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아, 시팔’이라는 욕이 절로 나오네요. 오늘은 생각을 그만하자 하며 마음도 닫아 버려야겠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말만 되새기며 무심한 도시와 무심한 사람들, 그리고 무심한 나를 보며 집으로 향합니다.

‘따르릉! 따르릉!’ 알람이 힘차게 울립니다. 근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자명종의 부품처럼 기계적으로 일어나 기업의 부품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구나. 나는 지금 부품처럼 살아왔구나. 나는 앞으로도 부품처럼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슬프고 화나기는 하지만 이내 체념하고 기계의 부품이 돼 출근합니다.

기계부품1 : 센터 바뀐다고 하니?
기계부품2 : 응. 그렇다고 하네.
기계부품3 : 그럼 우리는?
기계부품4 : 야, 그럼 지금 회사에서 월급이랑 퇴직금은 준대? 우리 12월31일이면 딱 1년이잖아? 근데 우리 근로계약서 작성할 때 입사일을 1월1일은 신정이고 실제 출근일이 1월2일이니 2일로 적으라고 하지 않았나?
기계부품5 : 모르지. 전에 그 사장놈처럼 도망갈지도.
기계부품6 : 설마, 그러려고. 물어볼까? 근데 누가 물어보지? 난 팀장이랑 친하지 않아서 물어보기 뭐한데….

우리들의 대화는 늘 이런 식입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고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회사 관리자들이며 문제제기한 사람들은 어느덧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는 것 또한 우리들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의미한 대화를 마치고 다들 현장으로 출동합니다. 아마도 내일도 이런 대화를 하고 현장으로 가겠지요. 이런 일과가 날마다 반복되는 것을 이젠 참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 너무너무 싫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막막하기에 이내 포기하고 맙니다. 어제저녁 생각처럼 나만 아니면 돼! 생각을 닫아 버리고 눈을 닫아 버리자! 그래, 그러면 될 거야!

지옥 같은 하루를 마치고 씩씩하게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뒤에서 까만색 자동차가 나를 치고 달아났습니다. 비교적 가벼운 사고지만 오른손 손목관절이 너무 아파 응급실에 가서 깁스를 하고 팀장에게 전화 걸어 “자동차가 손을 치고 달아났다”고 하니 그의 첫 말은 “그럼 내일 일은? 출근은 할 거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으며 다시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10년이면 이젠 바꿀 때 됐죠. 이렇게 10년이면 지금까지의 10년을 반성해야 합니다. 이렇게 10년이면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정도경영을 말하는 LG에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LG와 LG유플러스는 바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바뀌지 않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독한 10년이었습니다. 악몽 같은 10년이었습니다. 내 삶과 우리들의 일터는 살아남기 위해 가진 것 없고 배고픈 자들의 피가 튀고 살이 튀는 전쟁터였으며 온갖 부당노동행위가 판치고, 원청 관리자와 하청 사장들은 그들의 밥줄과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술집에서 밀실 거래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이런 일터를 바꿔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바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서울 중랑구 홈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설치기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만나고 싶다고 말한 그는 첫 만남 자리에서 단호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 왜 이렇게 사냐?”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의견을 모았고 우리 삶을 바꾸는 일에 투쟁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길은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확대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하청업체 사장들의 수법은 다양했습니다. 돈으로 탈퇴를 회유하거나 우릴 ‘말려 죽이겠다’며 일감을 주지 않아 많은 조합원들이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동조합에 탈퇴서를 던지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더 악화됐습니다. 노동조합을 탈퇴한 그들은 조합원들의 일을 더 빼앗아 가며 조합원과 비조합원 간 감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됐습니다. 예전에는 인사하던 동료마저 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청업체들은 철저히 우리를 갈라지게 했으며 개인화시켜 갔습니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만 아니면 된다”고 하는 말처럼 우리 일터는 그렇게 완성돼 가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교섭대표로 나온 경총은 “너희는 근로자가 아니다”며 교섭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교섭 또한 지연시키며 우리의 체력을 허비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전면파업을 했으며 광고탑에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LG그룹 쌍둥이빌딩 앞에서 220일을 노숙했으며 80일간 명동 우체국 앞 광고탑에 올라간 동지가 있었고, 그 두 명의 동지를 지키기 위해 광고탑 아래 수많은 조합원들이 노숙과 단식을 했습니다. 우리 몸부림은 처절했으며 목소리에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한이 서리고 있었습니다. LG와 싸운 7개월 넘는 기간 동안 선배 노동조합에서 싸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싸웠습니다. 너무 힘든 날의 연속이었으며 날마다 갈등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아침에 우리 조합원을 보며 각오를 다지는 일상이 반복됐습니다.

그러던 2015년 5월 우리는 싸움을 정리했고 조합원들은 역경을 이겨 내고 현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2016년과 2017년 노동조합은 내부적인 안정을 기하고, 투쟁기금을 비축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합원수도 800명을 넘기며 조직 확대에 온 힘을 기울이며 2018년 직접고용 싸움을 준비해 왔습니다. 준비하는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해마다 업체 교체, 악질 사장들의 폭거와 탄압은 지속됐고, 임금과 퇴직금 먹튀는 해마다 일어나고 있었으며 이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비조합원들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노조로 뭉치고 또 뭉쳤습니다.

지금 800명의 조합원들은 LG유플러스 홈서비스센터 전체 노동자 2천600여명의 삶을 바꾸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현수막에 걸린 ‘직접고용 개통해서 우리 삶을 AS하자’는 글귀처럼 비정규직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반드시 승리를 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는 용산 LG유플러스 앞에서 전 조합원이 순환하며 노숙농성을 이어 가고 있으며 매일 용산에서 대시민 선전전과 여의도 LG그룹 앞에서 퇴근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내일은 오늘과 다른, 아니 더 좋은 내일이 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전 조합원이 하나돼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 새해에도 투쟁하고 있을 것입니다. LG를 향한 우리들의 싸움을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길 바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편집부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