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역대 최악의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여름 무더위와 싸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는데 벌써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폭염이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수십 명의 생명을 앗아 갔던 것처럼 한파가 저체온증·동상 등 한랭질환으로 많은 이들의 건강을 또 해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최근 몇 년간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파가 더 심해지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초에 이미 한랭질환 환자수가 48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10여명에 이르렀다. 이는 그 전해 같은 기간보다 환자수로만 봐도 43% 이상 급증한 것이다.

한파로 인한 한랭질환에 가장 취약한 계층은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과 마찬가지로 당뇨·고혈압 만성질환자와 고령자들이다. 실제로 지난겨울 전체 한랭질환자 3분의 1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자들이었다. 하지만 노동자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산업현장에서 한파(저온)에 따른 한랭질환 재해자는 24명으로 주로 옥외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청소업종(5명, 20.8%)과 건설업종(4명, 16.7%) 등에서 발생했다. 이에 안전보건공단은 최근 겨울철 한파로 인해 노동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한랭질환 예방가이드’를 제작해 보급했다. 지난여름 폭염에 대비하기 위해 제작·보급한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가이드’의 겨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으로 과연 노동자들의 한랭질환을 예방할 수 있을까?

가이드는 한랭질환 예방을 위한 기본수칙으로 따뜻한 옷(방한장구), 따뜻한 물, 따뜻한 장소(휴식)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휴식에 대해서 “한파특보 발령시 적절하게 휴식하고 특보 종류(주의보·경보), 풍속 등에 따라 휴식시간을 조정하라”고 권고하는 것이 전부다. 열사병 이행가이드에서 “폭염주의보(섭씨 33도) 발령시에는 매 시간당 15분씩, 폭염경보(35도) 발령시에는 매 시간당 30분씩 휴식하라”고 구체적으로 권고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적절하게 휴식”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휴식하는 것인가? “휴식시간을 조정”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조정하라는 것인가? 가이드의 실효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열사병 이행가이드를 지난해 12월 이미 개정해 현장에 배포했다. 올해 6월3일에는 옥외작업 노동자의 건강보호를 위해 열사병 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건설현장 등을 대상으로 6월4일부터 9월30일까지 감독·점검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노동부의 감독·점검이 얼마나 이뤄졌을까? 폭염이 절정에 달한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 건설현장 등에서 열사병 환자가 속출하고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노동부는 근로감독관을 현지에 긴급 파견해 조사에 나서고 가이드를 지키지 않은 사업장에 즉시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뒷북 행정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랭질환 예방가이드 또한 실제 작업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요즘 삼한사미(三寒四微, 사흘 춥고 나흘 미세먼지가 짙은 현상)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겨울철 미세먼지가 심해졌다. 미세먼지는 단기간 노출에도 뇌심혈관계질환·호흡기계질환 악화로 사망에 이를 수 있고, 장기간 노출되면 암 발생 가능성도 있다. 특히 폭염이나 한파로 인한 건강장해가 일시적인 데 비해 미세먼지 위협은 1년 내내 지속된다. 더욱이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장해 역시 폭염이나 한파처럼 옥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집중된다.

폭염에 한파, 미세먼지까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이 노동자들의 건강에 이미 직접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다. 이런 영향은 청소·건설업종 등 옥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대개 폭염·한파·미세먼지 등에 취약한 고령자인데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름철 폭염대책, 겨울철 한파대책처럼 일회성 단기 대책으로는 더 이상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없다.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노동자 건강장해예방을 위한 종합대책’ 같은 보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대책 마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감독·점검을 통해 대책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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