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한 게 1991년 12월이다. 그때도 노태우 정부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에 관한 ILO 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대한민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게 1996년 12월이다. 그때도 김영삼 정부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에 관한 ILO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결사의 자유’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국제 사기극 

대한민국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한미FTA)을 타결한 게 2007년 4월이다. 그때도 노무현 정부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ILO 기본협약 정신을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대한민국이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한·EU FTA)을 타결한 게 2009년 7월이다. 그때도 이명박 정부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에 관한 ILO기본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까지 20년 넘게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 사회에 ILO 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과 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 비준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국제사회를 상대로 일종의 사기극을 벌인 셈이다.

김성태와 임이자의 생떼

ILO 기본협약 비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또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같은당 임이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가 ILO 기본협약 비준에 앞장서겠다는 노조간부 시절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기업이 다 죽고 공장이 다 죽고 있는데 무슨 노동기본권 보장이냐’며 생떼를 쓰는 현실이다.

노동운동을 발판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들은 자신들의 출발점을 부정하면서 자본가들의 편에 서서 비정규직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자유롭게 자기들의 조직과 단체를 만들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공익을 저버리고 사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노조간부 시절 ILO 기본협약 내용을 제대로 읽어 봤을 리 없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행동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신분열적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결사의 자유’는 노동권이 아닌 자유권 

결사의 자유를 규정한 87호 협약을 둘러싼 가장 큰 오해는 이 협약을 노동권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87호 협약을 읽어 보면 각 조항의 주어는 노동자단체가 아니라 노동자단체와 사용자단체(workers’ and employers’ organisations) 양자로 돼 있다.

다시 말해 결사의 자유는 노동자만의 권리가 아니라 자본가의 권리이기도 한 것이다. 결사의 자유는 노동자만 특정해 보호하는 권리가 아니라 자본가 등 모든 국민(people)에게 보장되는 기초적인(fundamental) 수준의 자유권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을 이룬다. 대한민국헌법 21조가 말하는 ‘결사의 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토대인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는 대가로, 현행법으로도 3개월이나 가능한 탄력적 근로시간을 6개월이나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는 게 지금의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주류의 태도다.

자유한국당이 며칠 전 추도식으로 기억한 ‘민주주의의 불꽃 김영삼’이 들으면 무덤에서 뛰어나와 소리 지를 일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민주주의의 새벽은 온다”고 일갈한 김영삼이다. 그 민주주의의 토대가 ‘결사의 자유’다.

자본가만 누리는 ‘결사의 자유’

자본가에게는 아무 문제없이 보장되는 결사의 자유를 헌법과 국제기준의 정신에 맞게 노동자에게도 공평하게 보장하자는데, 여기에 시비를 거는 이들을 자유민주주의자라 부를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 건국했을 때부터 자본가에게 보장돼 온 결사의 자유를 노동자에게도 보장해 자유민주주의를 완성하자는데, 이에 시비를 걸고 탄력적 근로시간 운운하며 물타기를 하려는 자들을 자유민주주의자라 부를 수 있을까.

하기야 ‘자유민주주의자’를 참칭한 극우 파시스트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진짜 적이었음을 한국 정치사는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