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서울고등법원 2018. 10. 23. 선고 2017나2005264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들은 강원도 삼척 소재 삼표시멘트(옛 동양시멘트)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로서, 2014년 5월께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에 가입해 지부를 결성한 후 같은해 6월께 위장도급 및 파견법 위반을 이유로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러한 원고들의 진정 사건에 대해 노동부 태백지청은 2015년 2월13일 원고들이 소속돼 있던 하청업체와 삼표시멘트와의 관계가 위장도급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삼표시멘트가 소속업체 근로자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통보한 바 있다. 이러한 노동부의 판단은 불법파견을 넘어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한 최초 사례였다. 그런데 노동부의 판단이 나온 당일 삼표시멘트는 자신의 하청업체이자 원고들이 소속된 업체였던 동일(주)에 도급계약해지 통보서를 보냈고, 같은달 17일 동일은 원고들 중 자신의 소속 근로자들 100여명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그 후 원고들은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 1심 판결의 요지

1심 재판부는 삼표시멘트가 원고들이 소속됐던 하청업체의 인사·급여 등 전반을 관리함으로써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등에 영향을 미친 점은 인정하면서도, 하청업체의 존재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해 원고들과 삼표시멘트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하청업체의 인사권, 임금결정, 작업현장에서의 지휘·감독, 하청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작업배치권, 근무시간, 근태, 휴가 등에 대한 관리의 측면에서 근로자들의 근로관계의 실질을 볼 때 원고들과 삼표시멘트 사이에는 파견근로관계는 성립한다고 봤다. 따라서 재판부는 파견근로관계 인정에 따른 효과로서 고용간주된 근로자들에게는 근로자지위에 있음을 확인하고, 고용의무가 인정되는 근로자들에게는 삼표시멘트로 하여금 원고들에 대해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도록 했다. 또한 삼표시멘트가 원고들에게 임금 차액 내지는 임금 차액 상당 손해배상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3. 항소심에서 원고의 새로운 주장

항소심에 이르러 원고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회사와 합의해 소를 취하했다. 혼자 남게 된 원고는 1심에서 임금 차액 상당 손해배상액이 인정된 기간 이외의 기간에 대해 추가로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1심에서와 달리 청구취지를 변경해 주위적 청구로 사실적 근로계약관계설 내지 직접고용법리설에 따른 근로자지위확인을 구하고, 고용의무 위반에 따른 임금 차액 상당 손해배상액 청구를 오히려 제2예비적 청구로 했다. 제1예비적 청구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21조 위반에 따른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주장하며, 소 제기 때부터 3년을 넘는 기간인 자신의 입사시점인 2011년 8월부터 퇴사시점인 2017년 10월까지의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액과 위자료를 청구했다.

4.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먼저 원고의 주위적 청구에 관해 사실적 근로계약관계설 내지 직접고용법리설에 대한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원고의 주장은 원고가 피고의 직접적인 근로자 지위에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원고의 주장 자체에 의하더라도 원고는 원고와 피고 사이의 묵시적인 근로계약을 주장하지 아니한다는 것이어서(원고는 항소심 초반에 조속한 결론을 위해 노조의 의사를 고려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주장을 철회했다. 그런데 피고가 항소심에서 소 취하서를 제출해 원고가 주위적 청구 자체를 철회하게 되면 소의 교환적 변경으로 항소 자체가 취하되는 효과가 발생해 소송이 종료되므로 주위적 청구를 유지하기 위해 주위적 청구는 유지하면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아닌 사실적 근로계약관계설 내지 직접고용법리설을 근거로 주장했다). 원고의 주장을 더 나아가 살피지 않아도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제1예비적 청구인 파견법 21조 위반에 따른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해서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고는 파견법 21조1항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으로서 원고에게 임금 차액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공교롭게도 이 사건에서 피고는 2013년 10월17일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받고, 2014년 3월18일 회생계획 인가결정을 받은 사실이 있어, 실제 원고가 주장한 소 제기 때부터 3년을 넘는 기간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은 회생절차 개시 전 원인에 기해 생긴 회생채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실권된다고 봤다. 한편 대상판결에서 원고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와 함께 위자료 지급도 청구했는데, 재판부는 원고에게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이 이뤄짐으로써 정신적 손해는 회복된다는 이유로 위자료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5. 판결에 대한 비평

종래 근로자가 차별을 받았음을 이유로 임금 차액을 청구한 사안에 대해 법원은 채무불이행 책임을 근거로 들기도 하고(콜텍 사건), 불법행위 책임을 근거로 들기도 하고(TDK한국 사건), 특이하게도 부당이득반환 책임을 근거로 들기도 했는데(MBC 사건), 이 판결에서는 파견근로자가 사용사업주의 파견법 21조를 위반한 임금 차별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으로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경우 그 근거는 불법행위 책임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판결은 더 나아가 “원고의 위 손해배상채권이 근로자의 임금청구권에 해당하지도 아니하므로”라고 판시해 임금 차별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으로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경우 파견근로자의 임금 차액 청구는 임금청구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판단은 소멸시효 판단의 측면에서 대단히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21조 위반을 이유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으로 임금 차액 상당액을 사용사업주에게 청구하는 경우 소멸시효에 따라 근로자는 최대 10년치의 임금 차액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를 저지하는 주된 논리가(주장의 타당성은 차치하고) 이러한 경우의 임금 차액 청구는 실질적으로 임금청구권과 같으므로 임금채권에 관한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돼야 한다는 것인데, 이 판결에서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하는 경우의 임금 차액 청구는 임금청구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경우에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아닌 원칙대로 민법 766조의 소멸시효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 현대자동차 사건의 경우와 같이 파견법 21조 위반을 이유로 불법행위 책임에 기한 손해배상을 인정한 경우는 있지만, 현대자동차 사안에서는 원고들이 주장 자체를 소 제기 3년 이내의 기간 내에 국한했기 때문에 아직 실제 파견법 21조 위반에 대해 소 제기 이전 3년을 넘어 그 이전 기간까지의 임금 차액이 손해배상으로 인정된 예는 확인되지 않고, 위자료까지 인정된 예는 더더욱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판결에서는 최초로 불법파견 사건에서 원고가 6년치의 임금 차액을 청구했으나 하필 피고가 회생절차를 거치다 보니 실제적으로 3년을 넘어 그 이전의 기간까지에 대한 임금 차액이 인정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파견법 21조가 쟁점이 된 사안은 아니지만 임금 차별에 대해 불법행위책임을 물어 소 제기 6년 전의 임금 차별행위에 대하여도 그 시기의 임금 차액 상당을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하는 판례(서울중앙지법 2011가단170494 판결)가 이미 나온 바 있으므로, 대상판결의 내용과 이러한 판결의 인정 사실을 볼 때 파견근로자는 파견법 21조 위반을 이유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하는 경우 최대 10년치의 임금 차액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멸시효 측면 외에도 파견법 21조 위반을 근거로 하면, 사용사업주가 아닌 파견사업주에게도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장점도 있고, 파견근로 개시부터 2년이 지나 고용의무가 발생하는 시점부터가 아닌 근로개시 시점부터의 임금 차액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로자에게 매우 유리하다. 따라서 앞으로 불법파견 사건의 경우에는 종래 불법파견의 효과로서 고용간주·고용의무 조항에 따른 채무불이행 책임 외에 파견법 21조 위반을 이유로 한 불법행위 책임을 주장하는 사례들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본 판결은 사실적 근로계약관계설 내지 직접고용법리설을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주장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판단조차 하지 않은 점에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는 하청업체가 실체가 없는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불과해야 인정되는 반면, 사실적 근로계약관계설 내지 직접고용법리설은 하청업체가 실체가 있는지 여부는 판단할 필요 없이 원청업체와 근로자와의 관계에서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되면 원청업체와의 근로계약관계가 인정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아쉬움이 있지만, 임금 차별에 대해 파견법 21조 위반을 이유로 불법행위 책임을 사용사업주에게 인정하고 임금 차액을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했다는 점, 나아가 그러한 판단에 그치지 않고 이런 경우의 임금 차액 청구는 임금청구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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