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민변 노동위원회를 비롯한 23개 노동·건강단체로 구성된 과로사OUT공동대책위원회가 14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개최한 ‘탄력근로제 확대 규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내용의 근로환경실태조사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장시간 노동자 우울·불안장애 2.4배 높아
노동시간센터가 발표한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임금노동자 34%가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 적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임금노동자 18.4%는 하루 10시간 일한 날이 한 달에 10일 이상이었다. 나머지 15.6%는 하루 10시간 일한 날이 한 달에 9일 이하였다.
센터 분석보고서는 안전보건공단이 2014년 임금노동자 3만7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4차 근로환경조사 원데이터를 재분석한 것이다.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한 날이 9일을 초과하는 경우 “가정·사회생활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비율이 그렇지 아닌 경우와 비교할 때 2.449배, “지난 12개월 동안 우울 또는 불안장애를 겪었다”는 비율은 2.427배 높았다. “지난 12개월 동안 불면증 또는 수면장애를 겪었다”는 비율은 2.06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 중 운수업에서 임금노동자의 35%가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를 한 달에 10일 이상 한다"고 답했다.
센터는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은 노동자 건강과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며 “하루 8시간 주간 고정 노동자와 12시간 주야 맞교대 노동자의 생활은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이어 “탄력근로제 확대는 주 52시간 상한제마저 무의미하게 만들고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해 제한 없는 하루 노동을 가능하게 한다”고 우려했다.
노동·건강단체 “탄력근로제 확대 과로사 조장”
과로사OUT공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탄력근로제 확대는 과로사와 과로자살을 조장할 수 있다”며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탄력근로제란 이름 자체가 물타기로 제한 없는 하루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고무줄 노동시간제”라며 “주 52시간 상한제가 아직 미적용되는 300인 미만 사업장은 탄력근로 도입시 주말 16시간을 포함해 한 주 80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정병욱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 1, 2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가 탄력근로제 확대로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하려 한다”며 “정부·여당은 포용국가를 만들자고 하지만 그 안에는 노동자가 없다”고 비판했다.
현장 노동자들도 정부·여당의 탄력근로제 확대 시도에 반발했다. 안병호 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은 “근기법 개정으로 영화제작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노동시간단축을 기대하는 상황”이라며 “최근 탄력근로제 확대 움직임으로 주 52시간 상한제가 물 건너가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호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장은 “인천공항 지상조업 노동자는 사실상 1년 내내 탄력근로가 실시되고 있어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며 “재벌 사용자만 배 불리는 탄력근로제 확대는 폐기해야 한다”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