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

“드디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대가 없는 노동을 강요받을 수 있는 상황이 돼 버렸어요.”

정의당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개최한 ‘탄력근로시간 단위기간 확대에 따른 피해사례 간담회’에 참석한 오세윤 화학섬유식품노조 네이버지회장 말이다.

정부와 여당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추진하면서 네이버를 비롯한 IT업계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노사 합의로 노동시간 줄였는데…”

올해 7월부터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가 시행됐다. IT업계 노사는 나름의 해법을 찾고 있다. 장시간 노동과 포괄임금제가 만연했던 IT업계는 근로기준법상 유연근무제 일환인 선택적 근로시간제(52조)를 통해 노동시간단축에 나섰다. 업계 특성을 반영해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하면서도 주 40시간 근무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 40시간을 넘기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한다. 현재 네이버와 카카오가 시행 중이다. 넥슨이나 스마일게이트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면서 반드시 근무해야 하는 시간인 코어타임을 설정해 놓고 있다.

일부 업체에서 연장근로를 했는데도 근무시간 기록시스템에 기입을 못하도록 꼼수를 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코어타임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그럼에도 선택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호응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어렵사리 연착륙하는 IT업계 노동시간단축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오세윤 지회장은 “포괄임금제 때문에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다가 주 52시간 근무 시행 뒤 IT업계 노사가 유연근무제로 문제를 풀어 가고 있었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업계 얘기만 듣고 나쁜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임영국 노조 사무처장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가 이뤄지면 노조가 있는 곳은 당장 어떻게 못하겠지만 무노조 사업장에서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근기법 개정 취지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지난여름 젊은 스태프 노동자가 과로사한 뒤 방송사들이 (장시간 노동 해소를 위한) 제스처(해법)를 내놓지 않다가 최근에야 겨우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현실을 모르고) 뒤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무노조 사업장·소수노조 피해 우려

임영국 사무처장 말대로 노조가 없거나 약한 곳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 근기법 51조(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따르면 탄력적 근로는 취업규칙상 2주, 노사 대표 서면합의로 3개월까지 단위기간을 설정할 수 있다. 탄력적 근로를 하면 주 40시간을 넘는 노동시간에 대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탄력적 근로를 할 경우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는지에 관해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이 명확하지 않다.

다수노조와 회사가 합의하면 소수노조 입장에서는 대책이 없다. 서우석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 홍보부장은 “탄력근로는 2주 또는 3개월 범위에서 특정한 기간을 정해 노사 합의로 진행해야 하는데 한국공항은 다수노조와 합의한 뒤 매월 근무스케줄을 통해 1년 내내 탄력근로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부에 따르면 한국공항에서 한 달 평균 12시간 넘게 일하는 날은 9일, 퇴근시간부터 출근시간까지 10시간이 보장되지 않은 날은 6일이다.

정의당 비정규노동 상담창구 ‘비상구’의 이훈 공인노무사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할 경우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인 과반수 노동자 동의, 근로자대표 선출시기·방법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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