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는 처음에 누가 만들었을까.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노동운동 내에서 비정규직 조직화 필요성을 제기하는 활동가들이 나타나고, 99년 최초의 비정규직 노조라 할 한라중공업사내하청노조·재능교육교사노조·여성노조 등이 결성되던 때부터였다.

일용직·임시직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비정규 노동자들은 실은 외환위기 이전에도 건설업 등을 중심으로 널리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운동이 주목했던 것은 사업장에서 ‘정규직’과 함께 일하면서도 정규직에 비해 엄청난 차별을 겪는 노동자들,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지고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들, 이른바 ‘비정규직’의 증가 현상이었다.

90년대 말 이래로 이들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결성하거나 노조의 문을 두드리는 일들이 늘어나고, 노동조합운동 내부에서도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노력들을 시작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조합에서 공세적으로 제기하는 요구와 투쟁으로 자리 잡았다.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사용자,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과 결성을 탄압하는 기업과 정부가 비판 대상이 됐다. 1998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 선언 이후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던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2001년 비정규직근로자 대책 특별위원회를 만들면서 다시 기지개를 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비정규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며 이변을 일으킨 것도 노동조합의 조직과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무현 정부 집권 이후 기류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집권 후 반년도 지나지 않아 대통령이 직접 “정부를 길들이려는 파업”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대기업 노조”라며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2004년 9월 정부는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며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제정안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악안을 입법예고했다.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가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당사 점거농성을 하면서 비정규직 보호법이 실은 비정규직 양산법임을 폭로하고, 곧이어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를 열어 비정규직 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총파업을 결의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 이후 비정규직 문제를 정권이 선점하고 대기업·정규직 노조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양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런 방식의 공격은 박근혜 정권 시절 정점에 달해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정규직에 대한 보다 쉬운 해고가 가능해야 한다는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으로 공표되기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다시 한 번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담론이 변화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면서 무기계약직 전환의 기준과 규모, 전환방식과 처우 등에 관해 공공기관 비정규직 및 노동조합들의 문제제기와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비정규직으로 일해 온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 내지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채용의 공정성’을 해친다는 주장이다. 이제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에 비해 차별받는 ‘불쌍한 존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공정한 경쟁도 거치지 않고 정규직 일자리를 차지하는 ‘염치없는 사람들’로 전락하고 있다.

개혁·보수를 망라하는 신자유주의 정권 20년을 거치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이렇게 전도된 데에는 민주노조운동의 책임 또한 크다. 누구나 비정규직 조직화를 말하지만 실상 자기 사업장 비정규직 문제에는 눈감고,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근본 요인이라 할 ‘노조하기 어려운 노동자들’ 문제에 안일하게 대응해 온 노동운동의 오류와 한계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기존 노조운동의 치부를 공격하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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