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노조 가입률 1%에 머물러 있는 100인 미만 사업장 1천500만 노동자. 특히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노조 가입률이 0.2%인 2만명, 그러니까 1천100만명 중에서의 노조 조합원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조합원보다 적은 답답한 상황을 풀려는 방안의 하나로 노동공제를 구상하고 추진 중이다.

반응은 예상대로다. 찬성과 반대와 무관심이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시도하는 것을 보고 판단하자는 반응도 있다. 세계노동운동사에서 보면 매우 오래된 구상인데 신선하다는 반응도 있다. 노조운동에서 공제는 새롭거나 특이한 것이 아니다. 양대 노총으로 대표되는 한국 노동조합이 공제기능을 놓치고 있었기에 그렇게 느껴질 따름이다.

독일 금속노조(IG Metall)는 조합원 240만명 중에서 퇴직노동자 조합원이 무려 50만명이다. 실업자도 당연히 조합원 자격을 유지한다. 노조는 이들을 조합원으로 유지하려고 업무 외 시간 사고보험, 법률 상담·보호, 비상시 지원, 사망시 지원 등 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영국 단결노조(UNITE The Union)는 유언장서비스, 장례비 보조·할인, 법률지원, 보험, 안과 할인, 쇼핑 할인, 개인금융상담 등 다양한 혜택을 준다.

아일랜드 임팩트노조(IMPACT Trade Union)는 배관·난방 등 긴급가정 도움 응급전화, 상해·질병·생명보험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그래서 퇴직노동자와 실업자가 조합비를 내며 노조에 남아 있는 것이다. 조합원수가 유지되거나 더 늘고, 그만큼 노조의 사회적 영향력도 커진다. 공제는 이렇게 평범하고 단순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 노동조합이 공제기능을 보완하는 것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기존 조직전략의 관성이 워낙 강한 데다, 논쟁도 걱정이고, 또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에 의해서는 대규모로 시도될 가치가 있는 구상이 아닐까 싶다.

공제는 회원 상호부조를 위해 출자금이나 회비를 내고 자치원리에 입각해 운영한다. 보험과 유사한 성격의 보험형 공제가 있고,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상호부조형 공제가 있다. 한국에는 건설공제·교원공제·군인공제 등 법과 제도로 인정받고 각종 지원 혜택도 받는 공제가 100개에 이른다. 그런데 대개 공제기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운영에서의 경제논리도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노동공제는 그런 공제를 하나 더 추가하자는 구상이 아니다. 노동조합도 소외된 주변부 밑바닥 노동을 주체로 세우자는 것이다. 공제 운영에서 사회연대경제 논리를 접목하자는 구상이다.

첫째, 자조의 원리다. 밑바닥 주변부 노동은 육아·교육·주거·의료·노후준비 등 일상생활의 기본 자체가 궁핍하고 불안정하다. 그렇지만 이 사회 어떤 집단도 책임 있게 나서지 않는다. 제자리를 맴도는 수준의 대책과 주장에 머문다. 그러는 사이 양극화는 더 심화하고 더 고단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긴 일상의 시대를 보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상호부조 방안을 그들 스스로 주체가 돼 풀어야 한다.

둘째, 연대의 원리다. 노동공제는 단순 자조공제에 머무르면 안 된다. 생활연대와 지역·산업연대, 사회연대를 실현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노동공제는 사회 변화를 추구한다. 공제의 회원은 노조 조합원이 되며, 교육을 의무화하고, 각종 실천에 나서도록 한다. 그래서 노동공제는 공제노조가 돼야 한다. 기존 노조에서 공제기능을 회복하자는 구상이다.

셋째, 개입의 원리다. 주변부 사업·노동의 경우에는 이해와 요구를 대표하는 조직과 기구가 없다. 노동공제는 규모를 통해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 산업·업종·지역·사업장의 공정단가, 공정임금, 노동환경 개선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직업 교육과 상표 개발, 유통망 개선 등 산업의 유지·활성화에도 개입해야 한다. 밑바닥 주변부 노동이 어려운 배경에는 재벌과 대기업 위주 산업정책, 산업·업종의 취약한 경쟁력, 지역 낙후성, 원·하청 불공정 거래, 생산·판매·유통망 불안정, 사회의 외면 등 다양한 요인이 작동한다. 노동공제는 거기에 개입해야 한다.

다양하게 만나 의견을 나누고 있다. 노동자뿐 아니라 상인·농민·노점 등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못 할 바 없을 것 같다. 개인 소망은 10년 안에 100만명을 넘기는 것이다. 그래 봐야 1천500만명에서 10%도 안되는 수치다. 그런데도 막막하다. 그렇지만 함께 걷고 있기에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마음에 담는다.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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