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법인이 해산한 뒤 새로운 법인으로 재산상 권리·의무가 포괄승계될 경우 근로관계는 승계되지 않더라도 법인 해산일까지 임금 지급의무는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주심 대법관 김소영)은 아시아문화개발원(현 아시아문화원) 예술감독 이아무개씨가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이씨는 2011년 12월부터 아시아문화개발원 초대 원장으로 재직하다가 2013년 5월 원장직에서 사임하고 아시아문화개발원과 전시예술감독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2015년 1월9일 아시아문화개발원에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주요 업무추진 일정이 지체되고, 외부 평가가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당시 이씨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때문에 해고됐다'며 반발했다. 계약해지 두 달 뒤인 그해 3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아시아문화도시법) 개정에 따라 아시아문화개발원은 해산하고 새로 설립한 아시아문화원으로 재산상 권리·의무가 포괄승계됐다.

이씨는 아시아문화원을 상대로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이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봤으나 2심 재판부는 이씨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씨에 대한 계약해지 통보 역시 취업규칙이 정한 절차에 위반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어 부당하다며 해고기간의 임금 1억1천712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대법원도 이씨가 근로자에 해당하며 해고통지는 절차적·실체적으로 위법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새로 설립한 아시아문화원이 이씨의 근로관계까지 승계한 것은 아니라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법률 제·개정으로 새로운 특수법인이 설립돼 종전 단체에 권리·의무를 승계하도록 한 경우에 근로관계 승계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다면 근로관계가 당연히 승계되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아시아문화도시법 부칙 3조2항은 "아시아문화개발원의 권리와 의무는 아시아문화원 설립과 동시에 포괄승계한다"고만 적시돼 있을 뿐 별도의 근로관계 승계에 대한 규정은 없다.

다만 대법원은 근로관계가 새로 설립한 특수법인에 승계되지 않더라도 종전 단체가 해산하기 전까지 발생한 임금과 퇴직금 등의 채무는 포괄승계 원칙에 따라 지급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아시아문화원은 아시아문화개발원 해산 전까지 발생한 임금 6천112만9천원을 이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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